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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Oct 10. 2024

여왕벌 전투

01 휘슬

  식당에서 순댓국에 반주를 하던 중년의 남자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TV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놈의 태풍이 또..."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취기 때문인지, 테이블에 손을 짚은 그가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가시게요?"


대답대신 돈부터 건넨 남자는,


"입맛이 없네. 갑니다."

", 조심히 가세요."


식당을 나온 남자가 검은색 우산을 펼쳐 들었으나, 몇 걸음 가지 못했다. 바람에 우산이 뒤집혔기 때문인데, 남자는 우산과 씨름하느라 비에 딱 젖고 말았다. 화가 난 남자가 고장 난 우산을 바닥에 패데기 치며, 발로 마구 밟았다.

그의 곁으로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열을 맞춰 뛰어갔다. 그들은 세찬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기에, 그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무리 중 한 사람이 곁눈질로 남자를 흘끔거리며 지나쳐 갔다. 남자의 시선이 멀어져 가는 그들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




"주 해인 선수가 꽁꽁 묶였네요."

"아무래도 가장 득점력이 높은 선수다 보니, 앵그리걸에서 올가미 작전을 쓰는 것 같습니다."

"올가미요?"

"주선수를 집중 마크하는 거죠. 연 도희 선수가 거칠게 전담 마크하고 있는데, 전반전 내내 주선수 득점이 없는 걸로 봐선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패스를 받은 주 해인 선수가 연 도희 선수를 제쳤습니다."

 

주 해인을 집중 마크하던 연 도희는 아차 싶었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주 해인의 페이크 동작에 속아, 연 도희는 중심을 잃고 말았다.


"슛! 골인! 주 해인 선수의 느닷없는 중거리 슛이 앵그리걸 골망을 갈랐습니다."


주 해인이 동료들을 바라보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고, 드레곤아이 동료들이 달려와 그녀의 품에 안겼다. 관중들은 소리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전반 내내 골이 없다가 마침내 주 해인선수의 멋진 골이 터졌습니다."

"앵그리걸 주장 사라선수의 표정이 안 좋은데요.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전반전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후반전에 앵그리걸 활약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일단, 실점을 한 상태라서, 앵그리걸 작전 변화가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유효 슈팅의 차이도 좀 보이고 있는데, 일단 전반전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지켜보시죠."


휘슬이 울리며 전반전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도희, 괜찮아. 네가 잘해서 그나마 한골로 막은 거야. 지금처럼 그렇게만 해."

"그래 도희야, 전반에 너무 잘했어."

"후반에는 우리가 밀어붙여서 이기자."

"그래 모두들 힘내자!"


자신의 잘못으로 팀에 피해가 됐다고 생각하는 도희에게 앵그리걸 선수들의 말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도희는 울컥하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앵그리걸 파이팅! 연 도희 파이팅!"


관중석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을 향한 응원소리에 연 도희가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연 도희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화답했고, 소녀는 그 화답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기뻐했다.


"오, 손 흔들었어. 아미야 좋겠다!"

"난, 축구선수가 될 거야! 연 도희 선수처럼 멋진 선수가 될 거야!"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호들갑 떨며 박수를 쳐주었다.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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