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나온 중년의 아저씨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리스 시절 날렵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열정만큼은 잉걸불 같았기에, 필드엔 생동감이 있었다.그들 틈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소녀가 보였다. 아미였다. 좀 엉뚱하기도 했고, 어색해 보이는 그림이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발을 맞춰 온 사람들처럼, 서로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웠다.
아미는 축구하는 걸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는 것 이상이었던 것 같다. 날마다 리프팅 연습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축구에 미친 사람처럼, 공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래서, 공에 집중하는 아미 얼굴엔 언제나 행복한 미소가 있었다.
축구할 때면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다고, 아미는 사연 있는 눈빛으로 말하곤했다. 축구경기 중에는 달리고, 몸싸움하며, 육체를 극한으로 내몰기도 했었는데,
혹사시키는 게,
숨이 턱까지 차는 게,
살아있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결국, 현실을 잊을 만큼 몰입할 수 있어서좋았을 것이다.
"먼저 가겠습니다."
"밥은 안 먹고?"
"네, 알바 가야 돼요."
"내가 알바 비 줄 테니까 밥 먹고 가."
"죄송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먼저 갈게요."
그 또래 아이들답지 않은 단호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렇다고 차가운 성향은 아니었다. 상대의 선택을 돕는 일종의 베려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대단한 건지, 지독한 건지."
"고등학생이라고 했지? 저 나이에 나는 엄마 용돈 받아서 PC방 가고 했었는데,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좀 안쓰럽네."
더위가 식지 않은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일을 마친 아미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 앞에 놓인 아버지 신발. 들어가기 싫었다.
나가 버리자.
어디든 집보다 좋을 거야.
망설임이 길어지고 있었다.
"아미 왔니?"
"... 네"
엄마에게 생각을 들켜 버렸다.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미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있는 엄마가 돌아보지않는다.
평소와 다르게 반기는 말도 없었고, 나이 들면서 많아진 그 흔한 잔소리도 없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미는엄마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눈 주변이 시퍼런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팔에도 멍자국이 보였다. 아미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화가 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 바보야. 왜 맞고 살아!"
"너 왜 이래?"
"뭐가 왜 이래?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건데? 이럴 거면 갈라 서라고!"
방에서 자고 있던 염치없는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뭐야?"
아미는 아버지를 찌려 보며 현관으로 향했다.
"저 년이..."
집밖으로 나온 아미는 어두운 골목을 밟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를 향한 미움이 물이 되어 눈에서 자꾸만 흘러내렸다. 아니, 엄마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자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바보. 한 대 맞으면 두대 때려야지! 다시는 때리지 못하게 해야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발길이 멈춘 곳엔 풋살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자신을 위로해 줄 사람도, 넋두리를 늘어놓을 사람도 없었지만, 괜찮았다. 집 말고 갈 곳이 있었다는 게 다행스러웠으니까.
가로등 불빛이 철망 사이를 찌르고 들어와 덩그러니 놓인 축구공에 떨어진다.
아버지 지만은 도박에 미친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는 사업도 크게 했고 돈도 풍족하게 벌었지만, 도박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가족들은 수시로 빚독촉에 시달려야 했고, 마음의 준비도 없이 생활전선에 내몰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수렁에 빠진 가족을 구해낼 의지가 없어 보였다. 폐인처럼 허구한 날 술을 달고 살았고, 자신의 실패를 가족에게 돌리며 상처뿐인 분풀이를 퍼부었다. 그렇게 붕괴될 것만 같던 가정은 엄마의 희생으로 근근이 버텨낼 수 있었다. 아미는 그런 엄마가 늘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