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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도스로 Oct 27. 2020

수도: 서울은 수도이고, 수도는 서울이다

- 한양 천도와 신행정수도 특별법 사건

○ 조선의 수도가 된 한양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고 바꿔야 할 것도 많습니다. 새롭게 정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수도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까요.

 조선 왕조가 창건되자 곧바로 천도론이 제기되었습니다. 태도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게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라고 명을 내리지만 배극렴, 조준 등의 대신들이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반대하자 천도계획은 중지되었습니다.

 그 후 수도의 새로운 후보지로 등장한 곳은 충남 계룡과 무악입니다. 계룡은 지금의 공주나 대전 인근으로 추정되는데, 계룡을 직접 둘러본 태조는 새로운 수도로 결정하였고 건설공사와 함께 행정구역의 정비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곧 경기도 관찰사인 하륜(河崙)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하륜은 “수도는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은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다”라는 이유로 도읍 건설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태조는 하륜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 후보지는 지금의 서울 연희, 신촌 일대의 무악입니다. 하륜은 무악을 찬성했지만 왕의 스승으로 불리던 고승 무학대사는 무악의 부지가 좁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한양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양을 수도로 정한 첫 번째 이유는 방어가 꼽힙니다. 수도는 임금이 있는 곳이니 외세로부터 방어를 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는데 한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북쪽으로 북악산, 남쪽으로는 남산, 동쪽으로 낙산, 서쪽으로 인왕산, 이렇게 사방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방어에는 제격이었습니다.



 행정적인 면에서도 한양은 강점이 있었습니다. 한양의 특징은 한강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도로와 항공로가 물자 운송을 주로 담당하지만 조선 시대 때에는 뱃길이 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한강을 이용하면 지방의 곡식이나 물자를 한양으로 가져오는 게 매우 수월했습니다.

 이처럼 한양이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학대사를 비롯한 여러 대신들도 찬성하자 태조 3년(서기 1394년) 10. 25.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1394년 이래로 서울은 계속 수도의 지위를 유지해 왔습니다. 전쟁이나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왕이 잠시를 서울을 비운 적은 있지만 상황이 해결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조선이 망하고 난 일제강점기에도 서울은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고, 그건 광복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수도 서울의 역사는 매우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이 수도라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도를 바꿀 수도 있는 겁니다. 실제로 수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수도 변경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서울공화국과 행정수도 건설 시도

 서울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중심입니다. 면적으로만 따지면 그렇게 넓은 지역은 아니지만 1000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엔 인구만 집중된 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중요 기능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국가의 중추기능이 수도에 집중되는 걸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그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중추기능이 수도권 특히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서울에는 주택난, 교통난,환경오염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반면, 지방은 개발이 상대적으로 늦어져 국토를 균형 있게 이용하지 못하고 수도권과 지방이 모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2002년 대선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은 선거공약으로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발표합니다.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 정부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긴다는 것이었는데,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구체화됩니다.

 우선 2003년 4월 청와대 산하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이 발족하여 준비 절차에 돌입했고 2003년 10월에 정부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행정수도 특별법”) 제안하였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의원 194명 중 찬성 167명으로 약 86%의 찬성률로 법안이 통과되자 정부는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위원회를 통해 세부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합니다. 추진위원회는 주요국가기관 중 중앙행정기관 18부 4부 3청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것으로 정했고, 신행정수도의 입지는 충남 연기-공주 지역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건 무리가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신행정수도 건설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일부 시민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 드리면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특별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신행정수도 건설은 무산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주된 근거는 행정수도 특별법이 헌법상의 권리인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보았기 때문인데, 구체적인 논리를 상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 수도가 서울이라는 헌법적 근거는?

 행정수도 특별법은 말 그대로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위한 법률이고 명시적으로 수도를 옮긴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행정수도를 충남 지역에 건설하는 게 수도를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건 아닌 걸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우선 수도의 의미부터 파악했습니다.

 수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적 사항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어, 국내적으로는 정치∙행정의 중심 기능을 담당하고 대외적으로 그 국가를 상징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수도가 어딘지를 결정할 때 헌법재판소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입법기관인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입니다. 국회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대의기관이고 대통령은 국가를 상징하고 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 운용의 최고 통치권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정수도 특별법은 신행정수도를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로 건설되는 지역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행정기관이 이전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명시적으로 수도를 옮긴다는 내용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수도를 옮기는 법이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판단입니다.

 그럼 서울이 수도라는 건 헌법적인 근거가 있을까요? 서울이 수도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서울과 수도는 거의 동의어처럼 쓰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그렇다는 것과 법적인 근거가 있다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만약 우리 헌법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로 정한다.”와 같은 문구가 있다면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헌법에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생각이 두 갈래로 갈립니다. 첫 번째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항은 헌법의 내용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고, 두 번째는 너무 당연해서 규정해 놓지 않은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의 내용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두 번째의 주장과 같은 생각인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로 헌법재판소가 내세우고 있는 개념은 바로 관습헌법입니다.

 헌법은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세세하게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정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런 공백은 결국 해석을 통해 메워야 한다는 겁니다. 이때 해석을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으니 기준이 필요한데, 관습헌법이 그 기준이라는 겁니다. 즉 관습헌법으로 인정되는 사항은 비록 헌법에 명시적으로 적혀 있지 않더라도, 헌법의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달리 말해, 서울이 수도라는 게 관습헌법이라면 수도는 서울이라는 헌법적 근거가 있는 셈입니다.

 그럼 관습헌법이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우선 헌법적으로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항이어야 하는데 헌법재판소는 수도를 정하거나 이전하는 건 핵심적 헌법사항이라고 봅니다. 국회와 대통령 등 최고 헌법기관들의 위치를 정하여 국가조직의 근간을 장소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이 되기 위한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일정한 관행이라 관례가 존재해야 합니다. 둘째, 그 관행이 일반적이라고 인정될 정도로 충분한 기간 동안 계속되어야 합니다. 셋째, 관행이 지속성을 가져야 하고 그 중간에 반대의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넷째, 관행은 애매하지 않고 내용이 명확해야 합니다. 다섯째, 관행이 국민들의 폭넓은 합의를 얻어야 합니다.

 이 기준에 따를 때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게 관습헌법의 내용이 될 수 있는지를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첫째, 현재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행은 확립되어 있습니다. 둘째, 조선시대 이래 약 600년 간 서울은 계속적으로 수도로 기능을 해 왔으니 충분히 긴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수도가 서울이 아니라 다른 지역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넷째,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애매모호하지 않고 명백합니다. 다섯째,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 중 서울이 수도라는 점에 대해 이견이 별로 없을 정도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헌법재판소의 논리에 따를 때,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단순한 상식이나 현실의 상태가 아니라 헌법적인 근거(관습헌법)가 있는 일종의 헌법인 셈입니다.      


○ 행정수도 특별법은 뭐가 문제였던 걸까?

 세상에 영원한 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뭐든 변하게 마련이고 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은 국가의 기틀을 유지하는 기본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법이지만 시대가 바뀌면 헌법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개정 과정을 까다롭게 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헌법의 개정절차가 법률보다 어렵게 되어 있는 헌법을 경성헌법(硬性憲法)이라고 합니다. 헌법의 개정 절차를 어렵게 만들어 둔 까닭은 우리의 헌정사와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과거 헌법은 정치권력의 통치 수단이나 정당성 확보의 방법으로 남용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권의 필요에 따라 헌법이 수시로 변경되었고 이러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헌법 개정의 요건을 엄격하게 정해 놓고 있는 겁니다.

 현행 헌법에 따를 때 헌법 개정을 하려면 우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국회의원이 찬성을 해야 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국회의 의결이 있고 나면 국민투표가 남아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하고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을 해야 헌법이 개정됩니다.

 서울이 수도라는 게 (관습)헌법의 내용이라는 말은 수도를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꾸려면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충남 공주・연기 지역이 우리나라의 수도이다”라는 조항을 헌법에 넣는 방식이 되겠죠. 

 그런데 행정수도 특별법은 “법률”입니다. 법이라고 해서 다 같은 법이 아닙니다. 넓은 의미의 법은 ‘헌법, 법률, 명령, 규칙’ 등을 모두 포괄하는데 이들은 엄격한 위계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헌법이 가장 최상위의 규범이고, 그 다음으로 법률, 그 아래로 명령과 규칙이 있습니다. 헌법보다 법률이 상위의 규범이므로 법률의 내용이 헌법의 내용과 배치되어서는 안 되고, 헌법으로 정해야 할 사항을 법률로 정하는 것도 안 됩니다.

 헌법에 따를 때 수도는 서울인데, 헌법보다 낮은 단계의 법률이 수도를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정하는 건 헌법에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헌법 개정을 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법률로 규정을 해 버려서 국민투표를 하지 않았으니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모든 재판관이 행정수도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관습헌법의 의미에 대해서 이견을 표출한 재판관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명문의 헌법규정을 가진 성문헌법(成文憲法)  국가인데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똑같이 볼 수는 없고 성문헌법을 보완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수도가 서울이라는 건 ‘현재의 사실’에 불과한 것이고, 그러한 사실이 계속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당위적 결론을 이끌어 내는 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 재판관은 소수이고 다수의 재판관이 위헌이라고 봤기에 행정수도 특별법은 위헌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사족>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이라고 결정하며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를 제시했을 때 상당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관습헌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는데 관습이 뭔지는 주관적인 면이 강해서 결국 해석하는 사람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관습헌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헌법이 모든 걸 빠짐없이 다 규정해놓은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헌법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해석은 불가피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서울이 수도라는 걸 강조한 이유는 서울이 가진 역사적 무게를 중요하게 고려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6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수도로 기능을 해왔는데 갑자기 그걸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의 역사성을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로 모든 게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된 현상은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균형적인 발달은 결국 서울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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