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피고 측 대리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도 이 사건에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고혁두의 깜짝 발언에 가장 놀란 사람은 심정순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예은 변호사가 나섰다.
“뭐 하시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법을 하나도 모르는 모양인데, 대리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김예은 변호사의 주장은 맞는 말이었다. 몇 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민사소송에서 대리인이 되려면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아, 대리인이 되려면 자격이 필요한 거군요.”
방해꾼을 어서 쫓아내고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고 싶은 김예은 변호사는 고혁두에게 쏘아붙였다.
“네, 당연합니다. 괜히 법정에서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얼른 법정에서 나가세요.”
“제 소개 좀 늦었습니다. 저는 고혁두 변호사라고 합니다.”
고혁두의 손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발급한 변호사신분증이 쥐어져 있었다.
“아, 물론 제가 하고 싶다고 대리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여기 계신 피고께서 동의하신다면 말이죠.”
심정순은 변호사가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고마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돈이었다. 변호사 수임료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최소 몇 백만 원은 들고, 많게는 천만 원이 넘기도 한다는데 심정순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심정순의 눈빛에서 그런 걱정을 읽어낸 고혁두는 심정순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수임료는 0원입니다.”
고혁두는 심정순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고혁두의 얼굴을 확인한 심정순이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변호사님.”
심정순의 집은 방 2개, 거실 1개로 이뤄진 자그마한 아파트였다. 준공연도가 오래되어서 낡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정갈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반질반질 빛났다. 심정순은 원래 청소와 정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었지만, 고혁두의 방문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신경을 썼다.
고혁두가 심정순의 집을 찾은 건 의뢰인 상담을 위해서였다. 고혁두는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만나기를 희망했으나, 심정순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변호사님께 수임료도 제대로 못 드리는데,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늙은이의 정성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은 뒤에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먼저 임대차계약서를 좀 보고 싶습니다.”
심정순은 장롱 밑에 고이 보관해 둔 주택공사와의 임대차계약서를 꺼내서 고혁두에게 건넸다. 계약서를 살피던 고혁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뭔가에 집중할 때 나오는 고혁두의 오랜 버릇이었다.
“이게 문제였군요.”
고혁두는 임대차계약서의 당사자 칸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계약서의 당사자 칸을 보니 임차인 이름에 ‘김선경’이라고 적혀 있네요. 어머님 성함은 아닌데, 김선경 씨는 누구인가요?”
“선경이는 제 딸입니다.”
고혁두는 심정순을 처음 만났던 날 심정순의 앞에 있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한데...”
“괜찮습니다. 저 시간 많습니다. 밥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죠.”
심정순의 눈은 먼 곳을 향했다.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1940년대에 출생한 심정순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다. 심정순의 남편 한기수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떠나보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처지였기에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결혼한 뒤에는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을 낳았다. 한기수와 심정순은 밤낮없이 일했다. 한기수는 주로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심정순은 봉제공장에서 근무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자식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호화로운 생활은 아니었지만 배를 곯지 않고 지낸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기며 지냈다.
두 사람은 지하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는데, 낭비하지 않고 허리띠 졸라매며 착실히 돈을 모으고 알뜰하게 절약을 한 덕분에 경제 상황이 조금씩 좋아졌다. 방이 1개에서 2개, 3개로 늘어났다. 눅눅하고 습기가 가득한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오게 되었을 때에는 집에서 삼겹살 파티도 열었다.
하지만 집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진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전세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떠돌지 않고 안정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한 가지 희소식이 들려왔다. 국민임대주택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국민임대주택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을 투입하여 저소득층에게 공급하는 주택이었다. 임대 기간도 길고 임대료도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한 편이어서 재산도 소득도 많지 않은 심정순의 가족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심정순은 국민임대주택을 신청한 뒤 새로운 집에 입주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서 심정순의 삶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길을 걷던 한기수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뇌의 혈관이 막혀서 혈액 공급이 차단됨으로써 뇌세포로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하는 병, 뇌경색이었다. 가장 먼저 마비가 온 곳은 다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비 부위가 점점 확대되었고 발음도 부정확해졌다. 한기수는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다 결국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다.
“한순간이었어요. 멀쩡하던 사람이 그렇게 반신불수가 된 게. 처음에 몸이 좀 이상할 때 억지로라도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받게 했어야 하는데...”
그때를 생각하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심정순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고혁두는 조용히 휴지를 뜯어 심정순에게 건넸다.
“나중에는 아예 대소변도 못 가릴 정도가 되고 말았어요.”
심정순은 남편 한기수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 삼시세끼 밥을 먹이고 하루에 한 번씩은 몸을 씻겼다.
국민임대주택의 입주자로 결정된 때는 그 무렵이었다. 국민임대주택 입주 신청을 한 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병수발에 매진하고 있을 때쯤 연락을 받은 것이다.
“임대주택에 입주하시게 된 걸 축하드립니다. 입주하시려면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셔야 하니, 시간 날 때 주택공사 방문하세요. 오실 때 신분증이랑 도장 챙기는 거 잊지 마시고요.”
남편에게 찾아온 불운 때문에 깊게 좌절했지만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확보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병수발을 하려면 낡은 집보다는 새로운 집이 낫겠다 싶으면서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심정순의 집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 충북지역본부까지 가는 데에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서 일을 처리하고 다시 돌아오려면 적어도 한나절은 잡아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상은 온통 병든 남편을 돌보는 일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한시도 남편의 곁을 비울 수가 없었다. 심정순의 고민을 알고 있던 딸 김선경이 말했다.
“엄마, 큰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임대차계약은 제가 대신 체결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고맙구나.”
하지만 딸이 계약을 대신 해 준 일이 나중에 그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심정순도, 김선경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이런 거군요. 어머님께서 병수발 때문에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 딸 김선경 씨가 어머님을 대신해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러 갔고 특별한 고민 없이 임차인을 김선경 씨 이름을 썼다는 것이죠?”
고혁두가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김선경이 심정순을 대신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러려면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런데 김선경은 자신이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았고, 본인의 이름만 적고 말았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임차인이 김선경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토지주택공사가 심정순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고혁두의 표정이 어두워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사건 쉽지 않겠는데...’
이 사건에서 뭐가 문제인 건지에 대해서 길게 설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혁두는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지금 와서 왈가왈부하는 건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그냥 지나간 대로 놔두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찾는 게 변호사의 역할이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고혁두는 머리도 식힐 겸 베란다로 나갔다.
바람이 고혁두의 얼굴에 와 닿았다. 바람에선 열기보다 서늘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어느새 여름의 열기는 꺾였다. 하늘은 붉은 태양 빛으로 물들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해가 지는 시각도 빨라졌다. 만물이 익어가고 수확을 거두는 계절, 가을이 오고 있는 징조였다.
***
청주의 한 호텔에서는 “상길장학재단 후원의 밤”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귀빈석에는 충북 지역의 주요 정치인, 고위 공무원, 언론사 대표, 종교계 지도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어서 상길장학재단을 이끌고 계신 윤희자 이사장님께서 인사 말씀을 하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자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60대 여성이 단상에 올랐다. 참석자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한 그녀는 준비한 원고를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 상길장학재단은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공부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설립된 재단입니다. 상길그룹의 각 계열사들이 상길장학재단에 출연금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돈만으로 상길장학재단이 운영되는 건 아닙니다. 오늘 여기 자리에 계신 분들을 포함한 많은 후원자들 덕분에 상길장학재단이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후원자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윤희자 이사장은 다시 한 번 청중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고, 박수가 쏟아졌다.
“1년에 한 번씩 상길장학재단은 장학생들을 초청하여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이 자리에 참석해주었습니다. 오늘 장학금을 받기로 한 학생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혹여라도 저희 재단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자존심이 상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이 시대의 작은 영웅들입니다. 그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윤희자 이사장이 말을 마치자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몇몇 학생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 윤희자 이사장의 인사에 이어 귀빈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단상에 올라 축사를 했는데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존경받은 기업인이자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에 헌신하는 윤희자 이사장을 한껏 추켜세우는 말이 주를 이뤘다. 그럴 때마다 윤희자 이사장은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학금을 받게 된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것으로 공식행사는 끝났다. 윤희자 이사장과 재단의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떠나는 모습까지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오늘 행사 준비하느라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 마지막으로 업무 지시를 하나 할까 하는데요.”
윤희자 이사장의 업무 지시라는 말에 재단 직원들이 긴장했다.
“오늘 늦게까지 행사 진행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내일은 다들 집에서 휴식하는 걸로 하죠. 물론 개인 연차는 따로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윤희자 이사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업무 지시라는 말에 긴장했던 직원들이 의외의 선물을 받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우리 이사장님 최고입니다.”
윤희자 이사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뒤, 호텔 로비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술에 잔뜩 취한 50대 남성이 호텔 로비에서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네까짓 것들이 뭔데 날 이따위로 대하는 거야?”
남성은 비틀비틀 걸어서 호텔 안내 데스크로 오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내 차 내놔.”
발렛파킹된 차를 찾는 모양이었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객님, 발렛파킹된 차량은 안내 데스크가 아니라, 차량 관리실로 가셔야 합니다.”
그러자 남성이 반쯤 풀린 눈으로 직원을 꼬아보며 욕을 내뱉었다.
“아이, 씨X. X나 귀찮게 하네. 차 가져오라는 말 못 들었어? 당장 내 차 가져오라고.”
차량 관리는 안내 데스크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그 직원은 도저히 이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소란이 일자 호텔 지배인이 나섰다. 지배인은 남성 대신 차량 관리실로 달려가서 차의 키를 받아온 뒤 남성에게 건넸다.
“손님, 차 키 여기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만취한 남성이 음주운전을 할 것이 걱정된 지배인이 물었다.
“그런데 혹시 대리운전 서비스 필요하십니까?”
남성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 X만한 새끼가 지금 나 술 취했다고 무시하는 거야?”
그러더니 다짜고짜 주먹을 지배인의 얼굴을 향해 뻗었다. 지배인은 걸음을 옮겨 주먹을 피했다.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성은 휘청하더니 바닥에 넘어졌다.
“아쭈? 니가 지금 날 팬 거야? 오늘 너 완전히 아작나는 날인 줄 알아.”
남성의 행패는 더욱 심해졌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지배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때 뿔테 안경을 쓴 사람이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상길장학재단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호텔을 방문했던 「뉴스&충북」의 신상건 기자였다. 신상건은 난동을 부리고 있는 남성 근처로 다가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러자 불똥이 신상건에게 튀었다.
“넌 또 뭐하는 새끼야?”
술에 만취해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성은 신상건에게 달려들더니, 갑자기 발길질을 했다.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신상건은 옆으로 고꾸라졌다. 성질이 확 났지만 개싸움에 끼어들 수는 없어, 억지로 참았다. 남성은 더욱 날뛰었다. 주변의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지며 폭행을 가했다.
남성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 호텔 한쪽에는 신규 출시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가전 업체에서 기증한 초대형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TV 화면에선 선명도를 부각시키기 위해 자연 풍경을 초과화질로 찍은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푸른 초원 위에 핀 형형색색의 꽃들 위로 나비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카메라는 나비의 날개를 클로즈업해서 비췄다. 그리고는 날개짓하는 장면에 슬로우 모션을 걸었다. 나비에서 날개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바람이 생겼다.
나비가 날개짓을 하는 동안, 호텔 로비의 남성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잠시 뒤 TV장면이 바뀌었다. 넓은 평야였다. 평야 한가운데에 강력한 토네이도가 일어났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웬만한 건물도 날려버릴 것 같았다. 다시 TV장면이 바뀌었고, 여전히 꽃밭에서 나비를 날개짓을 하는 중이었다.
호텔에서 난동을 부리는 남성도, 그 사건을 취재하던 신상건도 처음엔 이 사건이 만취객의 난동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다. 이 사건이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도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