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별고사리 - 주차장에서 포막의 털을 보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떠있다.
하늘에 별들이 떨어져 '벨진밧'이 되었다.
벨진밧에는 여러 종류의 별고사리들이 살고 있다.
'제주어 마음사전(현택훈)'에 이런 글이 있다.
제주도에서 기름진 땅은 '달진밧'이나 '벨진밧'이라고 한다.
땅이 기름진 것은 달이 물들어 있고, 별이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란다.
화산석이 많은 척박한 곳에서 사는 제주 사람들은
낭만적인 생각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 아닌가
벨은 별(星)의 제주 방언이다.
별이 떨어진 밭은 제주의 생태가 살아있는 곳이다.
고사리, 이끼, 버섯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제주에는 별고사리, 검은별고사리, 큰별고사리, 탐라별고사리가 살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별고사리이며, 사는 곳에 따라 다양한 변이가 있다.
검은별고사리는 특이하게도 습지의 물속에서 살고 있다.
큰별고사리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한 대형의 고사리이다.
그런데 탐라별고사리는 비닐하우스나 온실 근처에 흔하다는데
나의 눈에는 띄지 않아 제주살이 내내 보고 싶었다.
서귀포버스터미널 돌담에서 보았다는 정보를 얻어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제주살이가 끝나갈 무렵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 곁에서 탐라별고사리를 발견했다.
등잔밑에 어둡다는 말을 이렇게 경험하게 될 줄 몰랐다.
정말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실현이 불투명한 먼 기대를 하기보다는
내 주위를 사랑의 눈으로 살펴 행복을 찾아보라는 메시지 같았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자리에 매달려 있었네
ㅡ 작가 미상 ㅡ
(출처 : 박웅현, 책은 도끼다 p.46)
중학교 다닐 때까지 마을에 전기시절이 없어 집에서 등잔불을 켰다.
등잔밑 반경 1m 정도는 어두웠다.
제삿날은 촛불을 켰는데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형광불빛도 어두워진 시니어의 눈이다.
제주살이는 어려워질수록 낭만을 생각하라는 '벨진밧'을 배웠다.
제주살이의 마지막 추석날은 삼무공원이 된 베두리오름 투어이다.
삼무공원은 배두리오름을 깎아 만들어진 공원이다.
오름 남쪽에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데
별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여 베두리오름으로 불렀단다.
비가 내리는 삼무공원을 우산을 쓰고 걸었다.
제주에는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는데, 나에게 삼무(三無)란 무엇일까?
권위, 욕심, 체면을 벗어던진 제주살이가 아닐까?
또, 추석날의 베두리오름은 무엇일까?
별고사리를 찍던 순수의 마음일까?
제주 시인이 보내준 책자에 쓰인 별진내의 아련한 뜻일까?
양치식물에서 귀하기로는 검은별고사리나 큰별고사리이다.
그러나 나의 간절함을 일으킨 탐라별고사리가 내 마음에 있다.
나의 가슴에 살아있는 추억에 상상의 아름다움을 덧씌울 수 있어서이다.
인터넷에서 탐라별고사리를 검색했으나
탐라별고사리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어느 블로그에서 포막의 털을 제대로 찍어 올린 것을 보았다.
그 포막의 털이 보고 싶어 찾으며 5년이 흘렀다.
탐라별고사리 포막에 돋아난 털을 뷰파인더에서 확인하고서야
제주 별고사리 4종 세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