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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ug 20. 2020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

한달반 전쯤 대구 책사랑 수필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오늘 당선 소식을 들었다.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가작 순이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대단히 높은 성적도, 그렇다고 겨우 당선된 것도 아닌, 중간 이상의 성적이다.

오늘 내 글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당선될만한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 들기는 했지만,

어쨌든 은상을 수상한 내게는 70만원의 상금도 주어진다.


가장 먼저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은, 한번도 내게 돈 번다는 유세를 하지도, 내가 돈을 헤프게 쓴다고 타박을 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을 쓴다는 게 늘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내가 하고 있는 육아가 자신이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가치있고 힘들다고 이야기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겉으로는 당당하게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이유없이 불편하고 허전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하고 세 번 직장을 옮겼고, 며칠 전 네번째 직장을 새로 구했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월급을 더 올려받았는데, 이번에는 획기적으로 더 많은 월급을 받게 된 남편의 목소리는 유독 상기되었다.


나 역시 기뻤다.

집을 산다고 대출을 많이 받고부터는 휴가도 마음껏 못 갔다. 이번 휴가도 숙박비가 아까워서 토요일은 집에서 자고 일요일에 출발하기로 했다.

20년 상환의 대출을, 남편은 잘하면 10년만에도 갚겠다며 좋아했고, 나 역시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았다.

 

하지만 남편의 반짝이는 눈빛과 자신감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한편으로 허전한 마음도 들었다.

나도 직장생활을 계속했으면 몇 번이나 옮겼을 직장인데.. 나도 새로운 직장생활을 기대하며 설레어 했을텐데..


남편이 안정적으로 월급을 올려받는동안, 나는 내 일, 그러니까 가사일과 육를 더 열심히 해야했다.

남편이 가사일까지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게 남편의 월급 상승에 대한 보답으로 여기고,

나는 더 열심히 요리를 하고, 침구를 빨고, 청소를 했다.


오랜 장마로 화장실 곰팡이가 많아졌고, 청소를 해도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하루는 삼십분 넘게 아이들 미끄럼방지 매트에 핀 곰팡이를 칫솔로 박박 닦아냈다.

그날은 좀 지워졌다 싶었는데, 다음날 보니 또 올라온 것이다.

또다시 박박 지웠는데, 다음날 또 올라와 있다.


아 나는 정말 가사일에 소질이 없구나..

도대체 어떻게 하면 곰팡이가 잘 지워지는 걸까..


아이들이 샤워할 때 밟고 앉는 용도의 매트라 락스를 쓰지않고 친환경세제로만 닦아서 곰팡이가 더 안 지워졌을 거다.

그걸 알지만 자꾸 되살아나는 곰팡이를 보며,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나의 가사일을 해내는 능력에,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하던 찰나였다.


남편의 월급이 올랐다는 기쁨 속에서도, 그와 비교되는 내 커리어를 생각하며 마음 한켠 허전함을 느끼던 찰나,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곰팡이를 보며 내 자존감까지 하락하려던 그 찰나.


아무리 중한 육아라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습성에 따라 공부했고 직장생활을 했고, 그 자본주의가 깊이 내면화되어있는 내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과와는 전혀 무관한 육아와 가사일을 하는 나의 자존감은 자주 자주 낮아진다.


그런 때에, 나의 당선 소식은 내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내가 곰팡이에만 집착하지 않아도 됨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내 이름보다는 누구의 엄마로 더 불리며,

해도 티나지 않고 하지 않으면 티나는, 무한 반복에 가까운 가사일을 하는 그런 나 말고,

내 이름으로 존재하는 내가 되는 게, 엄마가 된 후로는 참 많이 어려워졌다.




뒤이어 엄마와 언니에게도 수상 소식을 전했다.

언니는 "너 이제 등단하는 거야?"라고 흥분했고, 엄마는 내가 곧 작가라도 될 듯 기대하셨다.

그런 두 사람에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야."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됐을 땐 나도 한껏 자존감이 올라갔다.

하지만 여기의 쟁쟁한 글들을 보며 내 글이 부끄러워 한동안 에세이 쓰기를 멈추고 있었다.


국어교사인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이과 출신 남편에게 어휘와 문법에 대해 수시로 지적을 받는다. 내가 연애시절 남편의 문법을 자주 지적한 걸 남편은 즐거워하며 되갚는 중이다.


아이를 낳고, 대체로 아이와만 대화하게 되면서, 내가 쓰는 어휘의 수는 급히 줄었고, 아이 눈높이에 맞는 말을 하자니 어려운 어휘나 문장은 아예 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글을 쓸때도 자주 막히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그래도 수백권의 책을 읽고, 수십편의 독후감을 썼고, 논문까지 써냈던 사람인데,

정말로 어휘가 떠오르지 않고 문법이 헷갈린다.

그런 나를 직면하는 게 싫어 한동안 또 글쓰기를 멈췄다.


그런 찰나였다.

그런 찰나의 수상 소식은 나를 다시 일으켜주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남들처럼 멋있지 않아도 된다고, 꼭 적합한 단어를 쓰지 않도 괜찮다고,

그냥 나대로, 처음 내 목표였던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를 하면 된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직 흔들리며 나아가는 중이지만, 묵묵히 나아가다보면 이 보이겠지.

이번 수상 소식은 흔들리는 내게, 괜찮다고,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보라고, 내 등을 토닥이며 응원해주는 것 같다.


그래, 다시 일어나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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