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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May 29. 2020

이혼제조기라 불리는 악마의 게임

Football Manager 편

  게임 이야기를 끝내기에 앞서 꼭 언급해야 할 게임이 떠올랐다. 게임편에서 처음 다루었던 주제인 FIFA, 위닝 시리즈와도 관련이 있는 축구 게임이다. 하지만 앞서 다룬 두 게임과 다른 점은 게이머가 직접 선수를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감독이 되는 게임. 바로 풋볼 매니저(Football Manager. 이하 FM)다.


  FM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4학년 때쯤이던가. 거의 졸업할 때였다. 당시 FM2006이 막 출시되었을 때였고,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를 했는데, 오로지 텍스트로만 가득 찬 게임을 보고야 말았다. 글자만 있다. 물론 선수 얼굴도 가끔은 있었지만 말이다. 당시에 다른 축구게임이 K리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데 비하면 FM은 K리그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선수들도 적당히 알맞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한창 이슈였던 이천수가 있는 울산 현대를 선택하고 첫 경기를 시작했는데, 선수들이 동그라미로 등장해 움직인다. 22개의 원이 경기장 그림에서 이동하면서 깨알만한 크기의 공이 같이 움직이는 상황이라니. 이미 FIFA나 위닝 시리즈가 3D 그래픽을 도입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FM을 하지 않았었다. 재미도 못 느끼겠고, 감독이 되어 할 수 있는 건 패배하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백수로 지내던 어느 날. 다시 FM을 시작해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무아지경의 상태로 게임을 하고 있는 필자 자신을 깨닫고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되어 퍼거슨 대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경험할 수 있다니! 게다가 루니, 호날두, 박지성의 조합을 직접 운용할 수 있다니! 여기에 이영표를 사올까? 그럼 박지성 친구 에브라는? 박주영도 데려와볼까? 이런 재밌는 상상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FM이 3대 악마의 게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3대 악마의 게임으로는 문명,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 그리고 FM을 꼽는데, 사람에 따라 더러 다른 게임을 꼽기도 하지만 문명과 FM은 거의 필수적으로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영국에서는 실제로 FM에 빠져 있는 남편들이 이혼 사유가 되어 이혼하는 사례들이 나와 이혼 제조기, 또는 과부 제조기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퇴근 후에는 으레 FM을 즐기곤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원으로 표시되던 선수들은 3D 인물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술은 세분화되었지만 인터페이스는 점차 초보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쉬워졌고, 매년 발매되는 FM을 필자 또한 2013부터 전부 소장하고 있다. PC 게임을 한 곳에 모아 구매하거나 실행할 수 있게 해주는 스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기서는 게임의 플레이 시간을 확인해볼 수 있다. FM 2013의 경우 플레이시간이 400시간이 넘었고, 평균적으로 지금까지도 100~200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기록했으니, 악마의 게임임에는 분명하다.


  지금은 혼자 조용히 FM을 하지만 필자도 한때는 FM 최대 커뮤니티 중 하나인 FM동(네이버 카페)에서 활동을 했었다. 해당 카페에 '자서전'이라는 게시판이 있었고, 그곳은 FM에서 하는 플레이를 기반으로 감독의 자서전 형식의 글을 쓰는 공간이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소설이나 팬픽이라고 보면 된다. 자서전 글을 읽다가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던 나는 직접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여러 팀들과 감독을 선정해서 자서전을 썼었는데 제법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동안 커뮤니티의 동지(?)들과 어울려 이야기도 나누고 따로 자서전 카페를 만들어서 나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FM을 재밌게 했던 시절이 아닐까 한다.


  어제 저녁, FM 2020으로 필자가 가장 애정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첫 시즌을 보냈다. 다행히 리그 우승을 하고, 챔스와 리그컵은 각각 8강, 4강에서 떨어졌다. 이렇게 재정적으로 궁핍하지만 애정으로 할 수 있는 팀으로 진행을 한다거나,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망처럼 갑부 구단주와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팀을 맡아 마음 편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다. 국가대표팀을 맡아 월드컵 우승을 노릴 수도 있고, 잉글랜드 6부리그 팀을 맡아 으라차차 만수로처럼 하부 리그의 감독을 경험해볼 수도 있다.(고수 분들은 최하위 리그부터 1부 리그까지 참 잘 올라온다.) 심지어 게임을 시작할 때 무직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오늘도 나의 FM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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