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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태석 May 26. 2020

타인의 세계

심즈 편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큰 관심을 끌었고, 주연 배우들 뿐 아니라 조연 배우들까지 큰 관심을 받았다. 아침드라마에서나 볼법한 불륜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신혼부부인 우리는 꼭 저렇게 살지 말자는 큰 다짐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 이입을 하고, 몰입하는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드라마에서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를 자주 볼 수 있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도 많은데, 현실의 팍팍함을 해소해보자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때때로 영화, 드라마, 책 등을 통해 현실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작이 있지 않은 게임들은 대부분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일정 부분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스토리가 없지만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도시를 만드는 게임, 심시티였다.


  내가 도시의 시장이 되어 전기, 수도를 공급하고 공업 지역, 상업 지역, 주거 지역을 설정한 후 도로를 깔면 건물이 들어오고 주민들이 입주한다. 인구가 늘면 세금이 많아지지만, 반대로 경찰서, 소방서, 병원, 학교 등을 지어달라고 한다. 학생 때 주로 즐겼던 심시티 2000은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2D 그래픽임에도 큰 인기를 얻었다. 심시티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진은 심시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탄생한 게임이 바로 심즈로, 현재 심즈 4까지 발매되어 있다. 


  심즈 게임을 시작하면 먼저 심을 만들어야 한다. 이 심은 플레이어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얼굴의 세부적인 부분부터 체형, 패션, 목소리 등을 개인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고, 심 개인의 특성과 선호도, 인생 목표까지 설정해줄 수 있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심으로 미리 만들어져 있는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된다. 가장 먼저 살 집을 정해야 하는데, 이미 만들어진 집으로 들어가거나, 부지만 사서 처음부터 집을 짓는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 초보자라면 만들어져 있는 집으로 이사하는 걸 추천하지만 필자는 보통 부지만 사서 처음부터 집을 짓는다.


  거실과 부엌, 화장실과 작은 마당이 포함된 원룸을 만들고 심이 입주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게임에서도 그래야 한다니! 설상가상 일자리를 구하고 나면 출근, 퇴근, 식사, 목욕, 용변, 취침. 끝이다. 주 5일 출근을 하면 현실의 나와 뭐가 다르겠는가!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경찰, 군인, 운동선수는 물론, 도둑이나 과학자도 가능하다. (도둑은 밤에 출근한다.) 일자리를 구하기 싫으면 컴퓨터를 사라! 그리고 컴퓨터로 필자처럼 글을 쓰거나 프로그래밍 연습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해커가 되거나 작가가 되는 길도 있다. 물론 그림만 열심히 그려서 그림을 팔아 돈을 벌어도 된다. 


  현실처럼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으면 심은 외롭다고 하소연할 것이다. 그래서 옆집, 혹은 직장 동료들과 자주 전화를 하거나 만나는 일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이성 심이 있다면 집으로 초대해서 자주 만나며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실에서 못 해본 연애를 게임에서라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결혼을 하면 부부 두 명의 심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여간 바쁜 게 아니다. 그래서 보통 한 명은 출근을 시키고 한 명은 집에서 놀거나, 직업을 출근 시간대가 다른 직업으로 선정해 컨트롤 부담감을 줄이곤 했다. 그것도 잠시. 아이가 태어난다. 이제 플레이어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 잠도 재워야 하고 목욕도 시켜야 하고 용변 가리는 법, 걷는 법, 말하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부부가 아이만 남겨놓고 외출을 한다면, 정부에서 사람이 나와 아이를 데려가기도 한다!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라서 이런 부분은 특히 엄격하다!) 


  아이를 키우면 학교에 간다. 그러는 동안 내 원래 심은 나이를 먹는다. 직장에서도 더 이상 승진할 직위가 없어지면 슬슬 지겨워져서 은퇴를 한다. 그리고 노년을 보내다 죽고, 플레이어는 심이 낳은 아이를 주 캐릭터로 삼아 게임을 이어나간다. 이게 반복되면 한 가문을 만들 수 있는데, 스토리는 없고, 엔딩도 없는, 마음만 먹으면 계속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심즈이다. 내가 현실에서 택한 인생과 다른, 타인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심즈는 게이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즈의 단점은, 게임을 만들다 만다. 무슨 이야기냐면, 심즈 4를 출시하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심즈는 확장팩과 DLC(DownLoadable Content)가 무궁무진하니까. 심즈 4를 예로 들자면 캠핑 콘텐츠, 직장 콘텐츠, 도시 생활 콘텐츠, 계절 콘텐츠, 펫 콘텐츠, 대학 콘텐츠 등등 현재까지 나온 확장팩과 아이템 팩 등은 20개가 넘는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다 구매한다면 족히 몇십만 원은 나올 것이다. (이게 순 장삿속이라며 심즈를 싫어하는 게이머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좀 아쉽다.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임.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대신 가 볼 수 있게 해주는 게임. 심즈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VR을 통해 심즈의 일상을 체험해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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