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 Imagine Dragons)
19. 무대공포증 극복을 도와준 전국노래자랑 박수
(Natural - Imagine Dragons)
Natural
A beating heart of stone
You gotta be so cold
To make it in this world
Yeah, you're a natural
Living your life cutthroat
You gotta be so cold
Yeah, you're a natural
강의 요청을 받았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만 나는 강의 요청에 매번 움츠러든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생 공모전 최종 PT와 당시 유행했던 압박면접을 거치며 취업에 성공한 나는,
청중이 있는 상태에서 말하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편안하게 둘러앉아서 2시간, 3시간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일방향적인 집중이 되는 구조에서는 심장이 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우황청심환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간단한 발표를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지는 걸 경험했다.
학창 시절에 팀프로젝트를 할 때면 거절하지 않고 PT를 담당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앞에 나가서 말을 하기 전에 숨이 가빠지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나의 발표를 지적하는 투명한 말풍선이 두둥실 떠오르는 걸 자꾸 상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참고, 발표를 했다.
직장인이라면 주어진 일에 '떨려서 할 수 없어요' 이런 답변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러다 일을 그르치겠다고 판단되는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대학원에 가서는 가장 팀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팀원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부터 내가 맡았다. 나는... 발표를 할 수 없으니까. 내가 발표를 했다가 우리 팀 전원의 성적이 망할 수 있으니까.
무조건 학기 중에 1회 이상 발표를 해야 하는 수업이 다가왔을 때였다.
시나리오를 쓰고 외우고 고치고 외우 고를 반복해서, 20분 발표를 자판기를 누르면 음료수가 나오듯 자동반사처럼 읊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막상 무대에 서면 처음에는 나만 알게, 그리고는 3-4분 정도가 흐르면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알게 손가락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리고,
모두가 알게 되면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끼는 그 순간부터는 급격하게,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발표 20분 전, 동기 언니가 여행 갈 때 가져가려고 챙겨둔 맥주 한 캔에 빨대를 꽂아 쉬는 시간에 마셨다. 약간 취기가 올라오고, 손과 입술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하자, 동기들이 불을 꺼줬다. 발표하는 내 시야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도록. 그날 모두의 응원과 성원과 노력 덕분에 나는 발표를 잘 끝냈다. 물론 목소리는 떨렸고, 정신은 없었지만 마지막 PT 이후에 4-5년 만의 발표였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너무, 힘들었고 고단했고, 무엇보다 이게 뭐라고 내 마음을 이렇게 지치게 만드나 싫었다.
이런 걸 '무대 공포증'이라고들 부른다.
낯선 사람과의 침묵을 즐기지만, 좋아하는 친구들과 있으면 끊임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내가 '무대 공포증'이라고 하면 다들 웃는다. 정말이야? 이렇게 웃다가, 그러다가, 내가 사시나무 떨듯 손을 떨거나, 목소리가 가늘어지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양의 '메에~'울림이 담긴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다들 진지해진다. 쟤 어떡해- 이런 마음으로.
코로나 때 강의 요청을 받았다. 앞서 거절했던 강의요청이었다. 그래서 농담처럼, "사실 제가 앞에서 설명할 때 긴장을 많이 해서, 더 좋은 분이 하시면 좋을 거 같다"라고 제법 내 탓이지만 내 탓아닌 내 탓같은 느낌으로 거절했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말하니 과정을 기획하는 담당자가 누구 추천할 사람 있냐고 물었고, 강의를 잘하실 수 있는 몇 분을 추천해 드리고 통화를 종료했었다.
지난번과 비슷한 단계를 기대하고 있는데 연락을 주신 A 과정장은 이렇게 말했다.
A 과정장 : 네, 괜찮아요 이번에는 코로나라 비대면입니다. 강사님 앞에서 말씀하실 필요 없고 편하게 앉아서 하심 됩니다.
아, 한 번 더 에둘러 거절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렇다면 더 강의 집중도가 좋아야 할 텐데, 저는 아무래도 적임자가 아닌 거 같습니다."
A 과정장 : "한번 해보시죠. 저는 믿고 연락드리는 겁니다. 일단 한번 해보시죠."
일단, 한번, 나를 믿는다 뭐 이런 단어들의 조합에 이끌려 나는 대학원 학점과 연계되어 어쩔 수 없이 했던 과제 발표 이후에 5년 만에 다시 누군가의 앞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과정이 다사다난했고, 첫 강의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강의라는 표현보다는 '이야기'란 설명이 더 적합할 수준이었다.
그렇게 비대면 강의가 이어지다가, 방역 단계가 낮아진 그즈음,
원래라면 비대면 강의로 진행했어야 하나 일시적으로 '대면 강의'로 강의가 변경되었다.
외운 대로, 매번 하루 전날 숙지하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연습한 시나리오 대로 강의를 이끌어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정말이지, 말을 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으로. 10초가 넘게 무대사고 같은 상황이 진행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과정장이 "빠빠밤 빠밤 빠밤~"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면서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수강생들이 사전에 숙지한 대로 다 같이 박수를 치면서 함께 전국노래자랑 배경음악을 불렀다.
'이게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 오늘 이 강의실에서 만나기 전에는 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는 눈빛에 마우스와 포인트를 잡고 달달 떨리던 손이 좀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심장 소리가 여전히 귀에도 들릴만큼 뛰고 있지만,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정신이 남아있었다.
마치, 잠시 멈춤을 해둔 영상을 다시 플레이하듯,
강의를 스무스하게 마무리하고, 과정장과 대화를 했다.
이미 수강생들에게 "강의를 너무 잘하지만 가끔 긴장하는 강사님이다, 강사님이 긴장하시면 우리 이렇게 다 같이 박수를 쳐주자"라고 사전 교육과 리허설까지 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부족한 강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주고, 박수를 쳐준 수강생들 덕분에,
긴장하는 나를 위해서 문 밖에서 모니터링하다가 문을 열고 바다를 가르듯 머리 위로 박수를 치며 누구보다 크게 노래를 불러준 과정장 덕분에,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그들의 그런 마음을 받아서 스스로를 잘 진정시켰던 그날의 나 덕분에,
그날부터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드문 드문 강의를 요청받아 강의실에 서고 있다.
(강의평가도 꽤 괜찮다... 이게 정말 희한하지만... 매번 감사하고 있다.)
매번, 긴장되고 아직도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너무 긴장이 되는 날은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기도 하고,
수십 번 확인한 강의자료를 오타를 찾듯 다시 차분하게 읽어보기도 하고,
그래도 가슴이 진정이 안 되는 날은 그날을 생각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의 불안한 순간에 다 같이 한 마음으로 박수를 쳐주며 입으로 노래를 불러주던 그 순간.
강사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의 그 순간, 강의실에 서 있었던 나는 모두의 순도 100% 진심이 담긴 응원을 받았다.
어쩌면 나를 성장시키는 건, 떨면서 강의실에 서서 버텼던 순간보다 내가 강의실에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고, 그분들에게 응원받고 있다."는 사실이었을까.
한 마디의 말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한 순간의 응원으로 주저앉으려고 했던 사람의 발걸음을, 다시 조금씩 걷게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
5월 가정의 날을 맞이해서 감사한 사람들을 떠올리라는 말을 듣고,
이제는 더 이상 교육 업무를 하지 않는 과정장에게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감사하다고 말해야지...라고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아 어느 순간 연락하기 멋쩍어지는 관계를 경험했던 사회인이었고, 이렇게 용기를 내지 않으면 또 마음속으로만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아가겠지... 싶었다.
무엇보다 과정장, 스스로에게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고, 그가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표현하고 싶었다.
"항상 감사해하고 있다, 당신 덕분에 내가 여전히 부족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신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만난 최고의 과정장이었다. "
수십 명의 강사를 관리하고, 수천 명의 수강생 강의를 조율했던 과정장이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에게 받은 감사를 꼭, 보답하고 표현하고 싶었다.
"저 아직도 강사님 첫 출강하실 때 생생합니다. 조금 떨림 속에서도 재치 있는 유머로 강의를 이끄시는 거 보면서 거의 프로이신데 왜 그렇게 강의가 떨린다고 하시는지 엄살이 심하시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과정장이 강사님 섭외요청 드릴 때마다 저한테 허락받고 요청드리라고, 제가 독점하고픈 최고의 강사님이라고 그렇게 자랑을 했었습니다. 강사님도 제게 은인이세요"
너무 떨리는 순간이 오면,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오면,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갔으면 하는 순간이 온다면,
도망치고 눈을 감아도 좋지만
그전에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
도망치고 눈을 감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저 조용히 박수를 쳐주고 눈에 응원을 담아 지켜봐 주자.
당신의 잠깐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내가 증명할 수 있으니까.
너라면 할 수 있다고, 이미 너는 잘하고 있다고
지켜봐 주자.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런 응원과 박수를 받았다면,
소리 없는 믿음과 신뢰가 가득한 눈빛을 받았다면
말해주자. 당신 덕분에,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