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 이하이)
5. 괜찮다고 나에게 이야기해 줘야 할 때
- (한숨 – 이하이)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지만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졌잘싸. 괜찮아.
졌지만 잘 싸웠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은메달을 따고 나서도,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의 세 손가락 안에 들었지만 금메달이 아니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마주하는 시절이 있었다. 왜 죄송한가. 4년 동안 매일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그들의 노력만으로도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나는 때론 승부가 결정 난 후에 아쉬움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선수들을 향해서 '괜찮다'라고 외쳐주는 관중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울컥할 때가 있다. 왜, 상대방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가 없을 때는 차마, 괜찮다는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졌지만 잘 싸웠고, 최선을 다했다는 졌잘싸와 괜찮다는 것이 결국, 선수들에 대한 위로인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게 해주는 주문 같아서 난 그 말이, 그 외침이 그렇게 좋았다.
어떻게 매일 이길 수 있겠어. 매일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어떻게 매일 최고가 될 수 있겠어. 가장 빛나는 시기에 체육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지루하다고 여겨질 만한 똑같은 일상을 견뎌낸 청춘을 향한 인정의 목소리라고 해서 괜찮다는 말이 그렇게... 듣기 좋았다. 당신들의 투지 덕분에 응원하는 우리가 행복했다고, 승부에 관계없이 우리가 경기를 응원하면서 즐긴 이 순간 자체가 좋았으니, 그걸로 되었다는 정리.
합격을 의심하지 않고 본 면접에서 떨어졌다. 주변에서 강한 추천이 있었고, 나 역시 지금껏 해왔던 대로 하면 결과가 나쁘지 않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지원을 하기 전부터, 합격을 확신한다는 응원을 받았다. 경거망동하지 말아야지, 겸손해야지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나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냐만, 지원부터 면접에 이르는 전 과정이 다른 이들에게 생중계되듯 계속 회자되는 상황 속에서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난 떨어졌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나에게 예외일 필요는 없지만, 너무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충분한 자격이 된다고 응원해 줬던 분들께 민망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그다음에는 몰려드는 위로에 지쳤다가, 그다음에는 막막했다. 위로의 말에 태연하고 의연하게 처신하는걸 도대체 얼마나 오래 해야 이 소란 같은 마음의 풍파가 잠잠해질 것인가.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아, 난 건방졌구나. 여러 번 사양해도 계속 제안이 왔던 자리라, 난 이 자리에 내가 갈 거란 의심을 하지 않았구나...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내 기분을 알고 싶어 하고, 좋은 기회라고 추천했던 나의 상사들마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살면서 넘어지고, 마음이 부서지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겠는가.
가끔은 일 때문에, 가끔은 사람 때문에, 가끔은 나로 인해서- 나의 선택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막막한 마음으로 고민하겠는가.
작년 연말, 제야의 종을 들으면서 올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공상과 상상으로 행복하고 설레었다.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믿고,
요행을 바라진 않지만 가끔은 행운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루는 것이 있다면 내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마음이 좁아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을 잃지 않도록 조심했다.
지치는 순간에도 예의를 잃지 않도록 얼마나 애썼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저렇게 추측하며 나의 탈락의 원인을 찾아서 분석해 주는 분들이 버겁기도 했고,
내 눈치를 보고, 말 많은 조직에서 좋지 않은 일로 주목받는 나를 챙기고 걱정하는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닿아있다는 걸 알아서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그저 평범하게, 어제 같은 일상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괜찮은 척하면서 출근해서 생활하니, 어느 순간 정말 괜찮아졌다.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몰입하고,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
마음이 고단했고, 때때로 막막했다.
지금 결과를 안다면, 시간을 되돌린다면 포지션에 지원을 했을까-처럼 하나마나한 상상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내가 평가자가 아니었고, 내가 결정자가 아니었기에 내가 왜 탈락했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실패, 불행으로 비칠 그 상황과 거리 두기를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실패와 탈락, 그 자체가 내가 아니고, 그저 내가 가는 길에 마주하게 되는 일이라고,
나 역시 실패와 탈락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그럴 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이야기해 줘야 한다는 걸 배웠다.
헤드헌터에게 제안을 받고 나의 몸값을 이리저리 재거나,
좋은 포지션이 와도 지금 프로젝트가 욕심나서 거절했던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지원했던 자리에 갈 수 없다고 세상에서 거절당하는 기분은... 어린 시절에나 느끼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몇 살이든, 내 경력이 얼마나 늘어났든 상관이 없더라.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래야 다음 기회에 움츠러들지 않고 또 도전할 텐데
나는 신입 시절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면서 간절했던 시절 이후에 또다시 거절과 탈락에 익숙해져야 하는
커리어 성장기를 마주하고 있구나.
항상 불안하고 나 스스로가 부족해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 원서 넣는 시기에 맞춰 더 높은 토익 점수가 나와야 하는데 동동거리면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몰랐던 시기,
경험이 부족해서 이 모든 과정이 경력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견뎠던 시기에 비하면 얼마나 나아졌나
가슴속에 찬 숨을 몰아내 쉬고, 가슴을 펴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움츠러들지 말자.
나를 뜨겁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나를 웃게 하고 위로해 주는 것들과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너무 뜨겁다가 갑자기 식기보다는
꾸준하고 꾸준하게, 그렇게 페이스 조절을 잘하는 전문가가 되자.
한숨 쉬어도 괜찮아.
면접 떨어져도 괜찮아.
기회는 또 있고, 도전은 계속될 거야.
내 인생이잖아. 괜찮아.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