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침묵 사이, 당신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한 여고생이 폐건물에서 목이 졸린 채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다섯 명의 용의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삶 속에 있었고, 그녀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 묻는 것은 ‘누가 살인을 저질렀나’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가’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현유정’이라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는 한 학생의 죽음이 이야기를 울리고, 그 죽음 뒤의 침묵과 모순이 긴장으로 변화한다. 이야기는 유정의 실종부터 사망까지의 행적을 추적하며, 이어서 그 주변 인물들의 시점 [절친 친구, 담임교사, 아버지, 남자친구, 엄마]으로 전환된다.
각 인물은 유정을 ‘알던’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기만의 비밀과 욕망을 품고 있다. 친구 ‘한수연’은 유정의 친밀했던 존재였지만, 그 친밀함이 그녀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점까지 닿았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담임교사 ‘민혜옥’은 학생을 보호해야 할 자리에 있었지만, 그날 유정에게 보냈던 문자 한 줄이 사건의 윤곽을 뒤흔든다. 아버지 ‘현강수’, 남자친구 ‘허승원’, 그리고 허승원의 엄마 ‘김근미’ 이들은 모두 “나는 유정을 위해 뭘 했나”라는 질문 앞에서 무너지기도, 도망치기도 한다.
정해연은 독자의 믿음을 차곡차곡 파괴해 나간다. 처음엔 가장 믿기 쉬운 사람이 가장 강력한 용의자였고, 그다음엔 또 다른 관계가 용의 선상에 올라선다. 다섯 명의 용의자 시점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일 때, 독자는 스스로 누굴 믿어야 할지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오는 반전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진실이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이 아니라, 수많은 갈림길과 둔덕 위를 지나온 물줄기라는 것을.
이 작품이 심장을 세게 때리는 이유는 폭력적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일상의 방관과 관계의 균열이기 때문이다. 유정이 ‘피해자’로서 존재하는 동안, 그녀를 둘러싼 어른들은 모두 자신들의 문제로 바빴고, 친구는 몰랐던 척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내미는 손가락이 되었다.
정해연은 이 미묘한 일상적 폭력이야말로 가장 무섭다고 말하는 듯하다. 누군가에게서 끝없이 기대했던 선택이, 결국은 침묵이나 회피였던 순간들, 그 틈에서 죽음은 조용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