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증명, 가장 슬픈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 미스터리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여운을 남긴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추리소설’이라는 틀을 쓰고 있지만,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건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을 위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고통스럽고도 완벽한 대답이 바로,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 속에 침잠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평범하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하나코가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살해하고, 그것을 목격한 옆집 수학 교사 이시가미가 그녀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 하지만 곧 독자는 이 사건이 단순한 은폐나 공범의 구조가 아니라, 치밀한 논리와 순수한 감정이 결합된 역설적인 방정식임을 깨닫게 된다. 이시가미는 수학자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숫자처럼 통제할 수는 없지만, 범죄의 구조는 수식처럼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계획은 논리적이며 정교하다. 그러나 그 기저에 흐르는 감정은 그 어떤 수학 공식보다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이시가미의 헌신은 철저히 일방적이다. 그는 하나코의 죄를 덮기 위해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질 각오를 하고, 그녀에게조차 계획의 전모를 알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코는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착각한 채’ 살아가고, 이시가미는 ‘절대 그녀에게 진실을 알리지 못한 채’ 사라진다. 이 헌신은 아름다운가? 아니면 끔찍한가? 히가시노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 헌신이 완벽하게 기능하면서도, 인간적으로는 처참한 비극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한다.
이 작품에서 탐정 유카와와 이시가미는 두 천재의 대결로 그려지지만, 본질은 ‘논리 대 논리’가 아니라 ‘논리 대 감정’의 대결이다. 유카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논리를 쓰지만, 이시가미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논리를 구사한다. 둘은 같은 언어를 쓰되, 목적이 다르다. 이 충돌은 추리소설적 쾌감을 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도무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감정적 깊이를 제공한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숭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시가미의 사랑은 표현되지 않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이해조차 받지 못했지만, 그 자체로 가장 절실했다. 히가시노는 여기서 ‘헌신’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한다. 그것은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가 영원히 몰라줘도 괜찮다는 각오로 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 읽고 난 후에야 진정한 의미가 시작된다. 독자는 이시가미의 계획이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떠올리기보다는,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곱씹게 된다. 그의 논리는 완벽했지만, 그 감정은 독자에게 더 깊은 충격을 안긴다. 이처럼 『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인간의 감정이라는 미해결 방정식을 남긴 채, 잊히지 않는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