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마음의 댐이 터져서 범람하려는 것을 사력을 다해 겨우 막아가며 나는 힘겹게 상담실을 찾았다. 상담 선생님과 마주 앉아 나의 간단한 신상을 이야기하고는 어떤 말을 먼저 꺼낼까 생각했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상담실의 적막을 메우던 순간이 잠시 이어졌다. 절망과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상담 선생님에게 스스로도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내뱉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꽤나 열심히 살았다. 유년기를 비롯한 나의 삶의 여러 면면들은 마주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럴수록 안주하면 안된다, 돌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살았다. 특별한 재능도 단단한 지지기반(심리적이든 물질적이든)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믿을 만한 건 오직 노력 뿐이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해온 것 같다. 다행히 그런 노력의 성과로 좋은 직장, 단란한 가정, 새 차와 집을 가질 수 있었다. 누가 봐도 괜찮은 삶이었다.
그러나 나의 과거는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여행을 갔다든지,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든지 하는 소위 '행복한 장면'에 있을 때에도 하수구 구정물 같은 감정이 불쑥 올라와 의아하게 여기곤 했다. 그런 구정물 같은 감정들은 바쁘게 일할 때,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때, 아이와 깔깔거릴 때는 잠시 떠난 듯했다가도 이내 불쑥불쑥 나를 침범했다. 그런 심연의 감정들이 가끔씩만 찾아왔다면 뜨거운 냄비를 탁 만졌을 때처럼 '앗, 뜨거!'하고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그 어두운 감정의 무더기들은 마치 뜨거운 구들장에서 밤새 화상을 입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쿨쿨 자듯, 해롭지만 익숙한 것들이었고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세상 속에서는 매우 유쾌하고 외향적인 사람으로 기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로부터 너의 밝고 유쾌한 성격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으니. 나는 그들에게 유쾌하고 당당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계기로 충격을 받고 긴 시간을 들여 나 자신을 돌아보기까지는 나도 나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가끔 한숨과 함께 '왜 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주어진 일, 만나야 할 사람, 가지고 싶은 물건 등에 관심을 돌리며 살아왔다. 답도 없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기엔 나는 바빴고 여유도 없었다. 밝은 얼굴로 유쾌한 농담을 날리며 깔깔대면서도, 내 마음에 불쑥불쑥 찾아드는 어두운 감정들을 동시에 느꼈다. 그럴 때면 인생은 고(苦)라더니 정말 그런가보네 하며 가볍게 넘기려 했다. 그러다 가끔 어둠이 농도 짙게 다가오는 날이면 어쩔 줄 몰라하며 실은 내가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불안도 느끼면서.
불쑥 올라오는 어둔 감정을 누르며 밝게 착하게 명랑하게 살고자 했던 나.
그런 나에게 작년 여름, 암이 찾아왔다.
술 담배도 안 하고 나이도 젊고 가족력도 없던 나. 자연분만 2번에 모유수유 총 2년, 피임약을 오래 복용한 적도,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한 적도 없던 나는, 유방암 발생 요인 중 어느 하나 해당되는 것이 없었지만 조직검사 결과 유방암으로 밝혀졌다. 연례행사처럼 으레 직장건강검진을 하러 갔다가 생각지도 않은 진단서를 들고 돌아왔다. '상세불명의 유방암'이라고 적혀있는 진단서의 문구처럼, 발생기전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암이라는 병을 마주하자 나의 기차는 멈추었고 공허함과 우울감은 터질 듯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더 이상 누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애쓰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암이라는 질병까지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수술과 치료로 일을 쉬게 되자 친구들이 위로를 건넸다. 이제는 푹 쉬면서 너를 위해 살라고. 그런데 이내 나는 깨달았다. 이 단순한 위로를 실천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뭘 해야 쉬는 걸까? 잘 쉰다는 게 뭐지?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쉬는 건지, 나를 위해 산다는 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얼 하는 게 쉬는 거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상담 선생님에게 건네며 씁쓸함을 삼키는 나.
이제부터 그걸 찾아보면 된다는 그녀의 미소에 손댈 수 없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마주할 때 느꼈던 막막함을 느끼는 나.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나의 구정물 같은 그 감정들은 무엇일까. 내가 그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긴 한 걸까.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나는 왜 사는 걸까.
그리고... 내가 과연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나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은 바로 암이라는 질병이었다. 암을 만나기 전에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애썼다. 더 많은 성취와 더 많은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아이들 교육과 양가 어르신들 보살피기까지 많은 것을 주말없이 해내면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착하고 유능하고 밝고 유쾌한, 뭐 대충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암을 마주하게 되었다. 암은 나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무엇보다 너 자신을 돌봐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이제 진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어쩌면 큰일이 날지도 모를 시점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생 남에게 맞추고 남을 돌보는데 익숙한 사람이지 도통 나를 돌본다는 것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줄을 몰랐다. 나를 돌본다는 게 뭘까. 공부하고 일하고 남을 돕고 이런 건 배울 데라도 있지 나를 돌보는 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나는 의문을 가득 안고 상담실을 찾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묻어두었던 거대한 어둠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을 갖추기보다 그냥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이런저런 멋진 스펙 말고 그냥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 원한다면, 가짜 자기 말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봐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바라는 나를 그만 내려놓고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쓰며 나는 나 자신과 좀 더 친밀하게 되었다. 그러자 어느 시점부터 내 몸의 일부인 것만 같았던, 평생을 함께한 그 어두운 감정들이 점차 옅어지고 행복, 감사, 기쁨 같은 것을 전보다 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눈물과 두려움과 고통, 슬픔의 터널을 지나자 평생 발목에 달려있던, 내 몸의 일부인 줄 알았던 모래주머니가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글을 쓰고 싶어졌다. 정신과 의사도, 상담사도, 종교인도 아니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마흔 넘어서라도 배우게 된, 보통의 한 사람으로서 글을 써보려 한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알 수 없는,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 가지게 되었을 때라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으며.
키보다 큰 수풀 속에 갇혀 나갈 길을 모르고 주저앉은 사람이 있다면, 수풀을 헤치면 이내 오솔길이 있다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되고 싶다. 나도 당신처럼 갇혀있었다고, 나도 슬프고 괴로웠다고, 수풀에 갇힌 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키를 훌쩍 넘은 수풀 너머로 서로를 응원하는 따스한 목소리가 우리 마음의 온기를 채우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