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 앉은 부자父子.
"이제 정말 가을이네요."
"어, 그러네."
대화는 여기서 멈추고 둘은 한참 말이 없다.
시덥잖은 날씨 이야기에서 다음으로 진전할 수 없는 관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서로를 몰라서, 서로가 낯설어서
그들은 데면데면하다.
관계는 아마도 쌓아가는 게 아닐까.
날씨 얘기부터 싱거운 농담, 짠한 위로, 뜨거운 격려가 차곡차곡 쌓여가며
우리는 관계의 탑을 쌓는다.
출근길에, 저녁 밥상에서, TV앞 소파에서
그들은 무수히 서로를 만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알지 못했다.
눈앞에 사랑스러운 존재를 두고서도
아버지의 권위와 자식의 도리라는 이름이 짐짓 무거워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날씨 이야기 말고는 할 얘기를 찾지 못해
애꿎은 단풍을 쏘아보고 있는 부자父子.
벤치에 꾸역꾸역 앉아 버티는 그들의 침묵 속에는
서로를 향한 미안함, 애틋함, 그리움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