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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Feb 01. 2024

선생님의 사생활

선생님도 퇴근 후엔 자연인이고 싶습니다

*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상쾌한(?) 월요일 아침, 교실 창문 열어 환기도 하고 따뜻한 차로 목을 축이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차례차례 등교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불쑥 지우가 말한다.


지우 : 선생님, 어제 혹시 짜장면 먹었어요?

나 : 어? 어떻게 알았어?

지우 : 선생님 집 앞에 짜장면 그릇 있던데요. 여러 개 있던데.

나 : 엥???

(출처 : adobe stock)



아. 집주소가 털리고야 말았다.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곳, 그러니까 학구에 살고 있다. 며칠 전 퇴근길에 우리 반 애들 둘셋을 만났는데 걔네들이 선생님 집이 어딘지 알아내겠다며 계속 따라오는 게 아닌가. 어서들 집에 들어가라고 훠이훠이 쫓아 보냈는데 글쎄 이 녀석들이 숨어있다가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 서는지를 봤단다. 내가 사는 곳은 한 층에 양쪽으로 두 집이 있는 구조인데 이 녀석들은 더 기다렸다가 어떤 집에 불이 켜지는지까지 지켜봤단다. 아니, 이게 도대체 9살 머리에서 나올 추리력이냐고.


여하튼 이런 경위로 집주소가 털리게 됐다. 너와 나만의 비밀이라며 급히 입막음을 해두었지만 얼마나 갈지. 사실 이건 그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리수거장에서 잠옷바람으로 학부모를 만나고, 내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아주다가 반 애들을 만났으며, '불금엔 치킨'이라며 동네 맛집에 치킨 먹으러 갔다가 거기에 대거 모여있는 학부모들을 발견하고는 얼른 포장해서 돌아온 적도 있다.


아...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편하게 동네를 돌아다니기 어렵다... 어? 어디선가 비슷한 고충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뭐였더라! 아! 연예인!!! 이건 바로 연예인의 고충이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동네를 활보하지도 편하게 데이트를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나는 무려 연예인이나 할 법한 고충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학부모든 아이든 마주쳤다는 걸 내가 '인지'한 경우는 괜찮은데, 부지불식간에 나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더 큰 불편함이 일었다. 내 차 번호를 기억한 반 아이가 선생님이 주말에 차 타고 어디 가는 걸 봤다든가, 선생님이 무슨무슨 가게에서 음식을 포장해서 들고 가는 걸 봤다든가 하는 경우 말이다. 하... 작고 귀여운 월급에 어울리지 않는, 사생활 침해 걱정이라니.




그러고 보니 저번 학교 근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남동생이 서울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잠시 동생이 집을 구할 때까지 내 집에서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6학년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는데, 월요일에 출근했더니 반 수민이가 야릇한 표정으로 묻는다.


수민 : 선생님, 남자친구 있죠?

나 : 무슨 소리야~

수민 : 에이~주말에 @@마트에서 선생님 봤는데요? 남자친구랑요~

(출처 : adobe stock)


아, 남동생이랑 장 보러 마트에 잠깐 들렀을 때 나를 봤나 보다. 요리의 '요'자도 모를 때라 사봐야 음료수랑 라면 정도만 간단히 샀을 텐데 이 녀석이 고새 나를 봤네. 잠시 스쳐가며 봤다곤 해도 남동생과 내가 연인으로 보였다니!!! 오마이갓!!! 이 불편한 느낌은 뭐지. 뭘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뭔가 해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계산은 네가 하라며 서로 떠미는 장면은 못 봤나봐... 여하튼 누군가 어디서든 나를 알아볼 수도 있다는 느낌은, 꽤나 별로였다.




나는 안다. 나는 학구에 살만한 그릇이 못 된다. 잠옷 바람으로 동네를 활보하는 자유도 누리고 싶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깔끔한 인상도 주고 싶다. 직장 근처에서 거주하며 출퇴근 시간을 아끼길 바라면서도 나의 사생활은 철저히 지켜지길 원한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아이러니 아닌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순 없다. 나는 학교에서 꽤 먼 곳으로 다음 주거지를 정했다. 나는 자유를 선택하는 대신 늘어난 출퇴근 거리를 감수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짜장면도 실컷 배달해 먹고, 잠옷 차림으로 분리수거장에 나갈 것이다. 주말이면 내가 좋아하는 요란한 깃털이 잔뜩 달린 형광색 가디건을 입고 나들이를 갈 것이며, 퇴근길에 친구와 통화하다 구수한 욕지기도 가끔 할 것이다.

(출처: adobe stock)


선생님도 퇴근 후엔 나 자신으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사랑스럽지만 교사의 가면은 학교 안에서만 쓰는 걸로. 얼마 후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이 만료되면 나는 학구를 떠난다.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 마저 너그럽다. 이젠 학구에 사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김@@! 주말에 동네에서 욕하고 돌아다니는 다 들린다~'

'다음 주까지 숙제 안 가져오면 ##동 ##호로 쳐들어간다~.'

 '박**이 요즘 너무 떠들어서 집에 가는 길에 가정방문 좀 해야겠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이들의 뜨거운 관심도 결국 선생님에 대한 사랑 아닌가. 선생님을 미행하고 선생님의 차번호를 외우고 선생님 집 앞에 놓인 짜장면 그릇수를 세다니. 이 정성이 그냥 툭 튀어나왔을 리는 없다. 학부모는 또 무슨 잘못인가. 학교 밖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쳐 서로 뻘쭘한 건 마찬가지일 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잠옷 바람으로 나갔던 분리수거장에서 마주친 @@이네 엄마도... 내 모습 못지않은 지극히 내추럴한 모습이었다...


그래요, 우리는 학교 안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로 만나기로 해요.

그래서 저는 학구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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