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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25. 2024

꼬꼬마 저학년 관찰일지

공공장소에서 코파는 사람, 여기 많아요.

*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중고등학교와 달리 초등학교는 입학 때와 졸업 때의 외양이 많이 다르다. 자기 등짝보다 더 큰 가방에 파묻혀서 입학했던 아이들이, 졸업할 때는 엄마보다 훌쩍 커진. 오리 꽥꽥~ 병아리 삐약~을 외치며 귀여움을 뽐내던 1학년 아가들은 6학년 즈음엔 죄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후드티를 뒤집어쓴다. 6년 동안 아이들은 그야말로 폭풍성장을 한다. 어른의 세계에서의 6년과 이곳 초등학교에서의 6년은 질적으로 다르다.


고학년을 주로 가르쳐 온 나는 저학년을 처음 만났을 때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했다. 무심코 한 아이가 글씨를 또박또박 잘 써서 지나가는 말로 "이야, 글씨 잘 썼네~." 한 마디를 했는데 그 순간 반 아이들이 일제히 눈에 불을 켜고 글씨를 쓰는게 아닌가. 내 말 한마디의 위력이 이토록 세다니? 신세계였다. 오늘따라 수업을 열심히 듣는 @@이를 칭찬하고자 "너무 바른 자세로 예쁘게 앉은 친구가 있네요!"하고 말하면 반 아이들이 죄다 흐뭇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다. 어린아이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한 칭찬이 자기 것인 줄 안다.

병아리 같은 1학년들은 6년 뒤 폭풍사춘기를 맞이 합니다.(출처: adobe stock)


그런데 훈육에 한해서는 다르다. 저학년을 대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한 훈육은 결국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진다. 고학년 아이들에겐 "누가 이렇게 떠들어~"라고 저음으로 얘기하면 각자 내 얘긴가 싶어 자연스레 수업분위기 조성이 되는데, 같은 방법을 저학년에게 사용해 보니... 1도 먹히지 않았다. 아이들은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누가 떠들지? 난 아닌데~ 조잘조잘조잘~'




(출처: adobe stock)


어린 아이들과의 일화를 잠깐 소개해본다.


수업 시간. 내 이야기에 몰입한 지호가 키득거리며 코를 파기 시작한다. 웃을 타이밍에 웃는 걸 보니 내 얘기를 듣고는 있는 게 분명하다. 지호짝궁 세연이가 코파는 지호를 째려보며 더러운 짓 당장 그만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낸다. 그런데도 지호의 두 번째 손가락은 콧구멍에서 나올 줄 모른다. 세연이가 폭발하기 전에 내가 이야기한다.


"어허~~ 수업시간에 코 파는 사람 누구야~."


여기서 예상되는 반응은? 나는 당장 코파는 것을 중지하고 남몰래 멋쩍어하는 지호의 모습을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됐으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터. 수업시간에 코 파는 드러븐 녀석이 대체 누군지 물색하기 위해 반 아이들이 두리번거리자, 글쎄 지호도 함께 두리번거리는 거였다. 두 번째 손가락을 콧구멍에 박은 채로.


지호 주변 아이들이 지호를 보고는 자지러지게 웃어 넘어간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때까지도 지호는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기어코 한 친구로부터 "야, 너 왜 계속 코파고 있어? 하하하하!!!"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지호는 자기가 코를 파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제서야 지호는 콧구멍에서 조심스레 멋쩍은 손가락을 빼낸다.


 아,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구나. 흥분하면 자기도 모르게 미어캣 마냥 벌떡 일어서서 수업을 듣는 녀석도 있고, 다른 친구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청소했다고 착각을 하기도 한다. 자칫 오해를 일으킬수도 있는 이맘때 아이들의 귀여운 특성이다. 이후로도 수업 시간에 코파는 아이들을 종종 발견했는데 단박에 상황을 정리하는 마법의 멘트를 찾았다.


"바른 자세 해볼까요. 자, 모두 손 무릎에~"


이게 바로 선생님의 바다.




하나 더. 저학년 아이들은 교실 속 의사소통상황에서 선생님과 자신을 1:多가 아니라 1:1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앞선 친구가 질문한 것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뒷 친구가 질문한다. 그걸 대충 반 인원수만큼 반복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종이접기를 가르치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면 이렇다.


나 : (종이 접는 장면을 TV화면으로 송출하며) "자, 이렇게 반으로 접어서 위로 올려요."

재연 : (자기 것을 위로 들어 올리며) "선생님, 이렇게요?"

나 : "응, 잘했네~"

승훈 : (역시 자기 것을 보여주며) "이렇게요?"

나 : "응, 승훈이도 잘했네."

(출처: adobe stock)


다음이 예상 되는가? 이제 반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 것을 들어 올리고 이야기한다.

"저는요?"

"저도요."

"선생님, 저는요?"


처음 저학년을 맡아 이렇게 모든 아이들에게 반응해주고 나니 며칠 만에 에너지가 탈탈 털리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돼. 이렇게는 도저히 1년이 아니라 한 달도 버틸 수 없어. 저학년 경력이 많으신 옆반 선배님께 노하우를 묻는다. 선배님은 같은 질문에는 한 번만 답해주는 스킬을 익혀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스킬은 이렇다. 종이접기 사이사이 중간점검 타이밍을 가지고 그때 모두 자기 것을 들어서 보여주기를 한다. 혹시 못 따라와서 초조한 친구는 중간점검 시간에 서로 도와주면 되니까. 이제 나는 우아하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응, 모두 잘했네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친구~?" 


그리고 또 한 가지. 종이접기는 우리 모두 평안하고 에너지가 많은 날에 하자. 종이 접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 한둘은 초조해서 울상이 되기 쉽다. 종이접기 이거이거 생각보다 하드한 심신계발활동이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을,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찰을 많이 하게 된다. 나도 어릴 때 이랬을까 싶은, 사랑스러운 순간들도 많이 있다. 어린 아이들은 급식을 많이 먹으면 먹은만큼 배가 뽈록 나오고 세수하지 않아도 얼굴은 늘 뽀송하다. 체육 시간에 땀 흘리고 교실로 들어와도 몸에서 땀냄새는 커녕 비누 향이 폴폴 난다. 잘 웃고, 늘 재잘거리고, 대체로 항상 신이 나 있다.


반면, 같은 내용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이야기 줘야 하고, 뭐든지 단계를 나누어 천천히 설명해 주어야 하며, 간단한 내용도 단박에 알아듣지 못해 답답할 때도 많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이렇게 의사소통이 안될수도 있나 싶을 때도 있다. 사람 대하는 직업은, 특히 어린 사람을 대하는 직업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지속하기 어렵다는 피부로 느낀다. 피곤하고 지치는 날에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아이들의 귀여움과 귀여움을 애정하는 내 마음이 팔할 정도는 될 것이다.


저학년은 저학년 나름대로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 아침 독서시간에 한 달째 똑같은 동화책을 열심히도 읽는 지호를 보며, 나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지호가 심각한 얼굴로 한달째 아침마다 읽는 책의 제목은 '똥떡'이다.)

(출처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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