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가격이 아니라 ‘기준’을 본다.

나는 왜 ‘1천 원짜리 짜장면’을 먹지 않기로 했을까?

by 부디아이

부자는 가격이 아니라 ‘기준’을 본다.


- 나는 왜 ‘1천 원짜리 짜장면’을 먹지 않기로 했을까? -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1천 원짜리 짜장면’을 파는 식당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눈길이 더 갔고, 댓글에는 맛도 훌륭하고 사장님도 참 인상 깊은 분이라는 칭찬이 가득했습니다.


사장님은 하루에 정해진 양만 준비하고, 재료가 떨어지면 바로 영업을 마무리한다고 했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묘한 따뜻함이 전해졌습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저 역시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다른 마음이 스며들었습니다.

‘나는 이 식당에 가지 않기로 하자.’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싼 음식을 일부러 피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1천 원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경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격이 싸서가 아니라, 그 환경이 내 일상이 되는 순간 나 스스로가 기준을 낮추게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에게는 그 식당이 정말 소중한 공간일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따뜻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 같은 장소일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가치를 충분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가난이라는 것이 단순히 ‘금액’에서 오는 게 아니라 ‘기준의 낮아짐’에서 시작된다고도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작은 타협이, 어느새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면 더 나은 가능성을 무심코 포기하게 됩니다.


찰리 멍거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똑똑한 결정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만 어리석은 실수를 피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도 이해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전략일 수 있구나.’


지금 1천 원짜리 짜장면을 먹는 건 절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습관이 되고, 당연하게 굳어지는 순간이 문제입니다.


저는 부자가 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제 선택의 기준을 조금씩이라도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싸서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해서 고른 것이 좋은 삶입니다.

가난에 익숙해지는 대신,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성장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환경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나요?

혹시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줄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

일단 시작합시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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