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간다는 건, 조금 느리고 조용한 일입니다.
감나무는 잎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가장 달콤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 느림과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익어가는 삶을 배워갑니다.
우리 시골 큰집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감나무는 마당에 있는 유일한 나무였습니다.
어릴 시절 추석에 큰집을 갈 때면 추석 시기에 따라 약간 덜 익은 경우도 있고 완전히 익어서 홍시가 된 채 감이 대롱대로 매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계속 봐와서 그런지 감나무에 대해 친숙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아파트나 공원 그리고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나가다 보면 감나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고, 바람 한 줄기에 툭툭 떨어지던 그 나뭇잎들.
그리고 그 위로 오롯이 남은 주황빛 감 하나, 둘.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왜 감은 잎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먹을 수 있을까?”
초록잎이 무성할 땐 감도 아직 딱딱하고 떫었고,
잎이 모두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단맛을 품은 감이 익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순간에야, 가장 단맛이 나는 걸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장면이 삶과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무가 고요할 때 비로소 그 열매는 무르익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영혼은 성장한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
살다 보면 모든 걸 움켜쥐려는 순간보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조용히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가 오히려 깊은 전환점이 되곤 합니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는 시간’도,
언뜻 보기엔 멈춰 보이는 시간도,
어쩌면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익어가고 있는 시간’ 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때때로 제 삶이 느리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앞서 가고, 누군가는 화려하게 커리어를 쌓고 있을 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감나무를 떠올릴 때마다,
“익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제게 위로가 되곤 합니다.
감은 잎이 다 지고, 햇살이 오롯이 닿아야 단맛을 품습니다.
조용하고, 느리지만, 결국 가장 단맛을 내는 건 그런 시간 이후지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도,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익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
마치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감나무가 가장 달콤한 열매를 안겨주는 것처럼요.
오늘도 저는 감나무의 지혜를 기억하며, 제 삶의 계절을 존중하려 합니다.
때로는 잎을 내려놓는 용기도, 홀로 서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익어가는 과정이 결국 내 삶을 더 풍요롭고 달콤하게 만들 것이라 믿습니다.
감나무처럼, 저도 제 시간을 믿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