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과 함께 하는 제주 여행 1
올해 여름, 아이 둘을 데리고 태국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다. 한 달을 지내며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결국에 시간이 흐르고 나니 즐거웠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만 떠올랐다. 아이들도 태국에서의 즐거웠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떠났다. 이번에는 겨울의 제주로. 손에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가슴에는 설레는 마음을 품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기분 좋게 공항에 도착해 우리가 이용할 항공사의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신분증을 내밀며 당당하게 이름을 말하자 직원의 고개가 미세하게 갸웃하는 것을 느꼈다. “혹시 여권을 가지고 오셨나요?” 하는 물음에 당황한 표정으로 “네? 여권이 필요한가요?” 하고 되물었다. 무슨 일이지. 왜 제주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권 소지를 묻는 것일까. 이어지는 직원의 설명을 들으니 항공권 예약을 영문으로 해서 영문명이 나와 있는 신분증인 여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국제선도 아니고 국내선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왜 모두 영문명으로 했던 것일까.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눈을 힘껏 감았다 뜨며 직원을 바라봤다. 직원분은 성인은 신분증이 있으면 한글 이름으로 수정이 가능하지만, 아이들은 여권 외 신분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안심하고 싱긋 웃으며 휴대전화의 앨범을 열어 주민등록등본 사진을 자신 있게 내밀었다. “고객님, 자녀분 항공권 이름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원본 서류가 필요합니다. 저쪽에 무인 민원 발급기가 있으니 발급받아서 이쪽 카운터로 다시 오십시오.” 이런. 왜 여행 시작부터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짐을 가득 실은 카트 옆에 아이들을 잠시 세워두고 얼른 달려가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 다시 카운터로 향했다. 우리 셋의 비행기 티켓을 받아 들고 숨을 돌리니 그 짧은 시간에 이미 등줄기에는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일은 간단하게 해결되었지만, 제주에서 돌아오는 항공권도 영문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올 때도 똑같은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서류도 가방 깊숙이 잘 챙겨두었다.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멀었지만 제주는 가까웠다. 좌석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는데 금세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착륙을 준비하고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창밖을 바라보자, 운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구름 사이 눈 쌓인 한라산이 보였다. 이륙하자마자 잠이 들었던 아이들은 벌써 제주 도착이냐며, 눈 감았다 뜨니 제주에 왔다며 들뜬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딸아이는 한라산을 카메라에 담고는 엄마에게 보여주며 즐거워했다. 아들은 아빠 없이 가는 여행에 자신이 보호자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무거운 짐도 척척 들어 옮기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든든한 마음으로 제주에서의 첫 발자국을 내밀었다.
여행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예약한 렌터카를 찾아 부르릉 시동을 걸었다. 제주에서의 가장 큰 목표는 눈 구경이라 제일 먼저 근처 마트에서 눈썰매를 사기로 했다. 여기저기 공항 주변을 둘러봤지만, 눈썰매는 살 수 없었다. 제주에 오기 전 미리 검색해 보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눈썰매 사기는 실패했으니, 내일로 미루고 일단 숙소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숙소를 찾아가는데, 가는 길이 심상치 않았다. 한라산을 통하는 516도로를 지나게 된 것이다. 꼬불꼬불 산길이 나오더니 금세 길 양옆으로 소복이 쌓인 눈을 볼 수 있었다. 해는 이미 사라져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데 눈길이라도 나올까 조마조마하며 운전했다. 얼마나 조심해서 운전했는지 예상 도착시간을 훌쩍 넘기고 숙소에 도착했다. 시작부터 여러 가지 실수와 해프닝으로 가득했던 제주 여행의 첫날, 숙소에서 가장 큰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우리는 전혀 몰랐다. 앞으로 우리의 제주 여행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