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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재비 Jan 20. 2024

우당탕탕 제주 여행기

아이 둘과 함께 하는 제주여행 3

  날씨 운이 좋은 사람을 날씨 요정이라고 한다면, 나는 날씨 요괴일까. 아니면 비의 요정일까. 여행을 가면 항상 비가 왔다. 건기에 여행을 가도 비가 왔고, 1년 365일 중에서 25일 정도 비가 내린다는 나라에 가도 꼭 하루는 비가 왔다.


  역시나 제주에도 비가 왔다. 한라산이 가까운 곳에서는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우리가 다니는 곳에는 비가 내렸다. 오늘은 친구와 친구의 아이들도 함께 보내기로 했는데 비의 요정이 비를 몰고 와 괜스레 미안해졌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씨를 대비해 미리 생각해 둔 실내 코스 무민랜드로 출발했다. 아이들은 아기자기 귀여운 캐릭터들 속에서 한껏 즐거웠다. 각자 느낌과 감상을 공유하느라 깔깔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무민이 함께 웃는 것 같았다.

토베 얀손의 캐릭터 <무민> 제주 무민랜드에서

  무민랜드에서 나와 근처 카페에 갔는데 카페 뒤 감귤밭에서 감귤 따기가 무료라고 안내를 해주셨다. 다음날 감귤 따기 체험하러 갈 계획이었는데 여기서는 무료로 체험을 할 수 있다니! 비도 살짝 그친 것 같아서 주인분께 안내받아 감귤밭으로 향했다. 나지막한 나무들에 노란 감귤이 가득 열려 초록 잎과 샛노란 감귤이 어우러져 제주의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감귤 나무들 사이에서 노랗게 잘 익은, 맘에 드는 감귤을 찾느라 신이 났다.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한 손에는 노란 감귤을 쥐고 똑똑 잘라 감귤을 땄다. 누가 더 큰 귤을 땄는지, 누가 많이 땄는지 서로서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잊고 있었다. 감귤밭에도 비의 요정이 있었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이들은 더 신이 났고,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엄마들은 조바심이 났다. 감귤 따기를 급히 마무리하고 카페로 올라가는데, 아이들 얼굴에 빗방울과 함께 즐거움도 가득 묻어있었다. 그래. 이런 게 여행이고, 즐거움이고, 행복이지. 비가 와서 걱정했던 순간들을 뒤로하고, 비 오는 제주의 운치를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소천지로 향했다. 한적한 숲속 오솔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넓은 바다와 바위로 둘러싸인 소천지가 보였다. 전날 비가 왔었냐는 듯 맑은 하늘과 파아란 바다가 여기가 제주라고 다시 한번 일러주는 것 같았다. 울퉁불퉁 현무암 바위들이 제주만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보목 해안가에 있는 관광지로 마치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소천지라 불린다. 소천지는 지도상에 검색해도 찾기 힘들고 뚜렷한 표지판도 없어 아는 사람만 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소였지만 제주 올레길을 점점 많은 이들이 찾으면서 제주올레 6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소천지도 자연스럽게 유명해졌다. 이곳엔 1 급수에서만 산다는 생물들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맑고 화산활동과 같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학술적 연구 가치가 있는 곳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VISIT JEJU
제주도 소천지


“우와! 진짜 백두산 천지 모양이네? 멋지다!”  

“엄마, 여기도 물고기들이 살까? 한번 볼까?”


  아이들과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한참을 서서 소천지를 바라보았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물속이 환히 비쳤다. 물고기가 지나가나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지만, 우리의 느린 눈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소천지 근처에서 스노클링도 많이 할 정도로 물고기들이 많다고 했다.

 

  소천지에서 제주의 자연에 감탄하고, 이제는 겨울 제주를 느끼기 위해 눈이 가득한 천백고지로 향했다. 천백고지는 한라산 중턱, 해발고도 1,100m인 1100 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겨울이 되면 한라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멋진 설경을 자랑한다. 우리도 겨울 제주에 왔으니 눈 내린 한라산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우리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 살고 있기에 평소에 눈 구경은 전혀 해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썰매장의 인공눈이 눈놀이 경험의 전부였다. 진짜 눈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짜 눈을 만져보게 해주고 싶었다. 눈 구경도 하고, 눈썰매도 타기 위해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 미리 천연 눈썰매장 포인트를 알아두었다. 천백고지에 가면 넓은 눈밭이 있다더라, 눈썰매를 대여해주기도 하고, 어묵을 팔기도 한다더라. 하는 정보를 모아 한라산 천백고지를 향해 달려갔다. 1100 도로 위를 달려가며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도로 옆 산길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눈이 쌓인 길을 보자 아이들은 점점 들뜨기 시작했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눈놀이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천백고지 휴게소 위치에 도착하자 주차장은 이미 꽉 찼고, 근처 갓길에도 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넓은 눈밭은 보이지 않았다. 급히 차를 잠시 멈추고 다시 검색해서 다른 위치로 차를 돌렸다. 이번에는 점점 갈수록 눈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눈이 다 녹았으면 넓은 공터를 찾더라도 눈놀이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기대에서 실망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천백고지를 찾았다. 눈썰매를 못 타더라도 눈도 보고, 만져보기라도 하려고 차를 멈췄다.

제주도 한라산 해발고도 1,100m 천백고지의 풍경

나뭇가지마다 소복이 내려앉은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뭇가지마다 보석이 맺힌 것 같았다. 쌓인 눈을 밟아보고, 사르르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눈을 느껴보았다. 아이들은 거의 처음 보는 진짜 눈에 푹 빠져 눈 위에 굴러도 보고, 눈을 뭉쳐 동글동글 눈사람도 만들며 겨울 제주의 참 매력에 빠져가고 있었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된 듯 눈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주변을 걸어 다니다가 저 멀리서 눈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차로 지나갈 때는 못 보고 지나쳤었나 보다. 눈썰매를 대여해 주는 곳은 보이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너도나도 아이들에게 눈썰매를 빌려주셔서 천연 눈썰매장을 즐기고 올 수 있었다. 우리의 겨울 제주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짜릿하게 재미있었다. 제주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행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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