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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재비 Jan 18. 2024

우당탕탕 제주 여행기

아이 둘과 함께 하는 제주 여행2

  여러 가지 해프닝이 있었지만, 드디어 쉼을 함께 할 숙소에 도착했다. 예약자명을 이야기하자 호텔 직원의 얼굴에, 낮에 보았던 공항 직원의 표정과 비슷한 당혹감이 비쳤다.     


   “성함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호텔을 예약한 내 이름도, 혹시나 몰라 남편 이름도 다 불러보고, 전화번호를 불러봐도 예약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직원의 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예약 대행 사이트의 예약 현황을 찾아서 직원분께 보여드리고, 메일로 받아 본 예약확정서도 찾아 보여드리고, 카드 앱에 결제 내역까지 보여드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오늘 날짜에 예약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로서는 방법이 없네요. 예약하신 대행 사이트에 문의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 둘은 배가 고프다 성화였기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그 앞에서 끝까지 씨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은 저녁 초대를 받은 제주에 사는 친구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예약 대행 사이트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나의 예약이 정확하게 확인되었고, 새로운 체크인 코드를 알려주셨다. 그 코드로 체크인하면 된다는 말에 일이 해결되는 조짐이 보여 마음이 가벼워졌다. 친구의 저녁 대접을 받으며 방금까지 겪은 일을 이야기 나누고, 그래도 해결돼서 다행이라고 웃을 수 있었다. 지글지글 흑돼지 오겹살과 매콤하게 맛있는 부대찌개는 그간의 긴장을 싹 풀어주었다. 든든하게 식사를 끝내고 배를 두드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체크인이 늦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새로 받은 체크인 코드를 알려주었더니 호텔 측에서는 여전히 예약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를 어째야 하나. 일이 해결된 게 아니었나. 나 혼자 떠난 여행이라면 근처 어디든 내 몸 누일 곳이 없겠냐만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 숙소가 없다는 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친구는 집에서 자고 가라며 내 마음을 안심시켰지만 도통 안심이 되지 않았다. 결제까지 다 끝낸 숙소를 그렇게 날릴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순간 다시 호텔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로 시작된 전화.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 해결되었구나! 우리 오늘 숙소에서 잘 수 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호텔에서는 퇴사한 직원이 우리의 예약을 한 달 전 날짜로 지정을 해두어 예약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그 직원이 퇴사해서 실수를 찾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호텔 측의 실수를 인정하고 숙소를 업그레이드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진심으로 사과하셨다.   

  

  무거운 캐리어와 짐가방을 내렸다가 다시 차에 실었다가 또다시 호텔 앞에서 내리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우리가 쉴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친 몸으로 짐을 정리하고, 애들을 씻기고, 아이들이 누워 잠을 청하고서야 나도 씻었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시자 노곤노곤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풀썩 누워 천장을 보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집에서 출발한 건 오전 11시였는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첫날부터 너무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벌써 여행 막바지에 온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또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할지! 다시 마음을 잡고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새벽 5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모닝 페이지를 썼다. 이제 2주 차가 되었다.     

모닝 페이지란, 창조성 회복의 실마리가 되는 도구이다.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세 쪽 정도 적는다. 모닝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라도, 아주 사소하거나 바보 같고 엉뚱한 내용이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중에서     

  여행 중에도 매일 지켜오던 루틴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어제 있었던 제주의 해프닝들을 적어 내려갔다. 글로 쓰고 나면 헛웃음이 나는 에피소드가 되지만 어제의 나는 실로 긴장과 당황의 순간들이었다. 모닝 페이지에는 어제를 기록하고, 오늘을 계획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즐거운 날을 보낼지 기대했다.   

  

  잠에서 깬 아이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제주 바다에 연신 감탄했고, 저기 보이는 다리는 어딘지, 저기 보이는 섬들은 이름이 무엇인지 질문 공세를 해댔다. 제주에서의 첫 일정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며 우리 셋 모두가 설렘 가득했다.  

   

  첫 코스로 계획한 쇠소깍에서 테우를 타는 체험을 하기 위해 예약 시간에 맞춰 서둘렀다. 가기 전 어제 전화 예약에 성공한 제주 유명한 김밥 맛집이라는 오는정김밥에 들러 김밥을 포장해 왔다. 내 입에도 맛있었는데 아이들 입맛에 딱 맞았는지 먹는 내내 “맛있다! 엄마 이 김밥 진짜 맛있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마지막 날 집에 가기 전에 꼭 한 번 더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에 웃음이 났다.    

 쇠소깍은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孝敦川) 하구를 가리키며, 이곳은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쇠소깍이라는 이름은 제주도 방언이다. 쇠는 효돈마을을 뜻하며, 소는 연못, 각은 접미사로서 끝을 의미한다. 계곡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뛰어난 비경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테우는 ‘뗏목’의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쇠소깍에 도착해서 구명조끼를 입고 테우에 승선했다. 테우 선장님의 훌륭한 노 젓기로 쇠소깍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선장님께서 재미난 입담으로 쇠소깍의 유래와 곳곳의 다양한 모양의 바위를 찾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쇠소깍은 날씨가 좋으면 정말 절경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간 날은 흐리고 구름 가득이라 맑은 하늘과 함께 한 쇠소깍을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흐리지만 멋진 쇠소깍의 경치를 바라보며 감탄했고, 센스 넘치는 선장님 덕분에 우리 셋 가족사진과 엄마의 독사진까지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테우에서 내린 후 바로 앞 하효쇠소깍해수욕장에서 바다와 모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검은 모래와 동글동글 돌멩이들이 많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아이들은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돌멩이를 쌓아 탑을 만들고 돌멩이로 모양과 글자를 만들기도 하며 제주를 온전히 즐겼다.     

  우당탕탕 실수와 사건투성이인 제주 여행이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겨울 제주를 온몸으로 느끼고 온 우리의 여행!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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