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눈으로 나를 평가하며 살았다.
선택을 앞두면
내 마음보다 먼저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떠올렸다.
이 옷이 단정한지,
이 말이 버릇없어 보이지는 않는지,
이 선택이 철없어 보이지는 않을지.
내 안에는 늘 아버지의 기준이 먼저 서 있었다.
구 남매의 여덟째로 태어난 집에서
사랑은 조용한 질서 속에 나누어졌다.
순서가 있었고 기대가 있었고
보이지 않는 비교가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내 주장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내 감정보다 분위기를 먼저 살피고
내 욕망보다 균형을 먼저 계산하며 살았다.
내 마음이 혹시라도
집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지는 않을지..
나는 무언가를 원하기 전에
그것을 원해도 되는지부터 묻는 아이로 자라났다.
아버지는 유독 나에게 엄격하셨다.
그것이 깊은 기대였는지, 당신과 닮은 모습에 대한 통제였는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생의 가장 위태롭고 처절했던 순간에
아버지가 건넨 서늘한 말들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었다.
가장 따뜻한 위로가 절실했던 그때,
아버지는 나를 안아주는 대신 차가운 비난과 절망을 건네셨다.
"너는 이제 끝났다"는 그 선고 같은 말은
사건 그 자체보다 더 오래 내 영혼을 짓눌렀다.
아버지가 규정한 '끝'이라는 단어 속에 갇혀,
나는 오랫동안 나를 '실패한 존재'로 여기며 숨죽여 살아야 했다.
나를 먼저 두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자식을 책임져야 했던 가장으로서,
사랑보다 책임이 먼저였던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임과 사랑은
결코 같은 온도의 말이 아니었다.
내가 한 번쯤 꼭 듣고 싶었던 말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네가 무엇을 겪었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떠나보내지 못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그분의 시선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 차가운 감시의 눈길을 거두어내려 한다.
아버지의 기준은 그분의 몫이었을 뿐,
내가 그 틀에 맞춰 나를 재단할 필요는 더 이상 없다.
이제는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그래도 된다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고.
나는 오직 너의 편이라고.
평생을 나를 옭아맸던 아버지의 그림자를 천천히 걷어내고,
이제야 비로소 나의 편이 되어 발을 내디뎌 본다.
그리고 이제, 나의 소중한 딸에게 이 마음을 이어주고 싶다.
엄마는 항상 네 편이라고.
네가 어떤 길을 걷든, 어떤 모습이든
엄마는 너를 온전히 지지한다고.
내가 끝내 듣고 싶었던 말을
이제는 내가 딸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건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