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인 나도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만,
결국 나를 키워가고 있었다.
실수하고 흔들리는 나를,
미워하지 않고 다정하게 안아보기로 한 이야기.
아이는 태권도장에서
오징어게임을 하고 왔다.
재미있었는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열쇠고리를 손에 들고 어슬렁거렸다.
씻지도 않고, 말도 듣지 않았다.
평소보다 훨씬 더 씻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씻자. 그거 엄마한테 주고 씻어.”
이미 나는 짜증이 나 있었다.
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싫어.”
그리고 열쇠고리를 내가 가져가지 못하게 더 멀리 두었다.
예전에 말해둔 게 떠올랐다.
‘말 안 들으면 휴대폰 없애버릴 거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함,
같은 생활지도를 반복하고 있다는 피로감이
감정을 끌어올렸다.
“그럼 휴대폰 없애버릴 거야.”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저 멈춰주기를 바랐다.
화를 낼 여유조차 없이,
상황을 단번에 꺾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열쇠고리를 버리려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내 거야! 내 꺼라고!”
그 순간,
나는 달려오는 감정을 잠시 멈추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엄마한테 지기 싫은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엄마한테 지는 기분이야. 이기고 싶어.”
아이의 솔직한 대답에
나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럼, 엄마가 무서운 아저씨나 관장님이었어도
이렇게 행동했을까?”
아이는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니.”
“엄마 눈에는,
네가 씻기 싫어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나갔다 오면 씻는 건 기본이야.
얼른 씻고 나와.”
우리는 진정할 수 있었다.
아이는 속상했지만,
꾹 참고 씻고 나왔다.
아이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분명히 느꼈다.
이제는 단순한 훈육이나 벌로는 통하지 않는,
다른 성장의 문 앞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럴 땐,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 한쪽에서 조용히 질문이 올라왔다.
며칠 동안 고민했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조언도 구해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와 차분히 마주한 순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도 많이 컸어.
엄마보다 키도 생각도 더 자라게 될 거야.
이제는 엄마와 맞서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해.”
이번에는 내가 멈춰서
상황이 더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유가 없던 날들이 떠오른다.
화가 커지고,
상처가 되는 말을 뱉고,
그리고 나서 나를 미워하곤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됐는데...”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았어도 됐는데...”
자책은 오래 남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조급했던 것 같다.
한 번에 행동을 바꾸고 싶어서,
빨리 알아들었으면 해서,
그게 사랑이라는 이유로
화를 내고 상처를 준다.
하지만, 정말로 한 번에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나조차 쉽지 않은 걸.
그런데 부모라는 이유로
우리는 아이에게 그걸 자꾸 기대하게 된다.
나도 사람인지라
하루 종일 아이를 챙기고,
회사 일에 치이다 보면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감정이 터져버린 뒤에는,
힘들어하는 나와,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래서 더 실감한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멈추는 건,
그 순간의 아이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라는 걸.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그보다 먼저
내가 나를 다독일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고,
화날 때는 단호하되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매일 실패하고,
또 매일 반성한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미워지기 전에
손을 내밀어 주곤 한다.
그게 부모라는 자리를
다시 붙잡게 만드는 힘이다.
그러니,
오늘의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부모인 나를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엔
조금 더 다정하게 멈춰보기로 한다.
오늘의 실천
감정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추고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다.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내 안의 조급함을 다독인다.
나에게 남기는 말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괜찮아.
중요한 건, 다시 사랑으로 돌아오는 거야.
오늘도 실패할 수 있어.
그래도, 다시 다정하게 시작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