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것
첫 번째 방 앞에 서서,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문 너머에는 내가 가장 오랫동안 외면했던 마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떨렸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두렵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을 거야.’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작고 아늑했다.
희미한 조명이 따뜻하게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작은 침대와 오래된 책상, 벽에 걸린 둥근 거울 하나가 보였다.
한 발, 두 발 방 안으로 들어서자, 뒤에서 문이 조용히 닫혔다.
나는 놀라 뒤돌아보았지만, 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닫혀 있던 것처럼 고요했다.
나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공간.
‘나는 왜 여기에 온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이곳을 찾아온 건 누가 등을 떠밀어서가 아니었다.
억지로 끌려온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선택한 것뿐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기쁨도 슬픔도, 화도 설렘도 없이 희미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살다간 결국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압도했다.
그때 선우의 말이 떠올랐다.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
나는 작은 침대 끝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내 안의 그 말을 반복했다.
“나는 스스로 온 사람이다.”
그 말은 작지만 단단한 울림을 가졌다.
도망친 게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때 내 앞에 놓인 책상 위에서 희미한 빛이 반짝거렸다.
조금 전까지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자리였다.
나는 호기심과 긴장을 품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 위에는 낡은 수첩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 위에는 아주 익숙한 글씨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 쓰인 문장은 아주 짧고도 강렬했다.
「나는 괜찮지 않다.」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오랫동안 외면하고 묻어두었던 내 진짜 마음이 거기 있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내가 처음으로 마주해야 하는 마음을.
나는 괜찮지 않았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한 것이다.
수첩을 붙잡은 손이 떨렸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무감각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기 위한 첫 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안한 채로 침대 위에 몸을 누였다.
여전히 막막했지만, 어제와는, 지금까지와는 다를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다음 이야기 | 4화 낯선 사람들과의 첫 대면
다음 날 아침,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서늘한 눈빛을 가진 여자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