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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대학 박교수 Apr 11. 2020

학벌은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학벌에 대한 재고: 학벌 콤플렉스를 안 가져도 되는 이유

"대학은 어디 나왔어요?" 

이 질문 많이 받아보셨죠? 이 질문을 받을 때 어떤 생각이나 드시나요? 그리고 어떤 감정이 생기시나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 이 질문받을 때 좀 뜨끔 했었습니다. 혹시 상대방이 내 대답을 듣고 나를 낮게 평가할까 하고요. 그리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감도 떨어지고, 주눅도 들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학벌 콤플렉스 같은 것에 시달리기도 했었죠. 


저는 왜 이런 생각과 감정이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었고 내신도 어느 정도 좋았었습니다. 그래서 명문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잡고 최선을 다해 달렸었죠. 하지만 아쉽게도 수능이 제 발목을 잡았죠. 결국 고등학교 때 목표로 했던 명문 대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별 생각지도 않던, 사실 지원할 때 처음 알게 된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실망감이 들더라고요. 제 자신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진학한 대학교에 대한 실망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기대했던 대학생활은 굉장히 학구적이고 모든 학생이 열심히 성공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이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술 먹고 노는 데 더 에너지를 쏟는 걸 보고 많이 실망했었죠. 더 나아가 목표로 한 대학에서 가질 수 있는 기회들을 못 갖는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습니다. 그 학교에 갔으면 내가 더 좋은 인맥을 쌓고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한 2년 정도 그런 콤플렉스를 가지고 침울하게 대학 생활을 했던 거 같습니다. 근데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여러 좋은 경험을 하면서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차차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기회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남들이 술 마시고 놀러 다닐 때 저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좋은 성적을 받아 4년 동안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특별히 운영되는 리더십 프로그램, 해외 견문 프로그램 등 좋은 프로그램들도 쉽게 선발되어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가졌죠. 몇몇 교수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멘토십도 받았고요. 만약에 제가 목표로 했던 명문대학에 갔었으면 더 뛰어난 학생들과의 심한 경쟁 때문에 가지지 못했을 법한 기회들이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은 제가 미국 박사과정에 진학했을 때도 일어났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나름 열심히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고 좋은 학점과 높은 영어 성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목표로 하던 최고의 명문 대학원 프로그램에 들어가지 못했고, 혹시 몰라서 지원했던 안전빵 주립대학교 박사과정에 그것도 간신히 들어가게 되어서 속상했었습니다. 하지만 학부시절처럼 낙심하지 않았고, 콤플렉스 같은 것도 다행히 없었습니다. 그동안 자신감을 조금씩 쌓아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입학한 학교에서 박사과정 5년 동안 여러 훌륭한 교수님과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탄탄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학원 시절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대학원 졸업 후 바로 미국 유명한 사립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요. 제가 목표로 했던 명문 대학원에서는 교수님과 일하려면 다른 쟁쟁한 박사생들과 경쟁을 해서 그 교수님의 관심을 사야 하고, 그 교수님들께서도 너무 바쁘시기 때문에 박사생들을 일대일로 지도해주고 훈련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오히려 탄탄한 훈련을 받으려면 그런 명문대학보다는 제가 나온 주립대학교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그런 명문 대학교는 학생도 많이 뽑는 편이라서 교수 임용 시장 (교수 잡마켓)에 나왔을 때 학교 내에서 다른 박사 후보생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 학생이 많지 않아서 이런 경쟁을 하지 않고 학교와 교수님들로부터 온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부 때와 마찬가지로 명문 대학원에 갔었다면 가질 수 없었을 수도 있는 기회들이었습니다. 


교수가 되고 나서 얼마 뒤에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레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을 접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Being a small fish in a big pond or being a big fish in a little pond."


작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큰 연못에서 작은 물고기가 될 것인가. 의역하자면 "용의 꼬리가 될 것인가 뱀의 머리가 될 것인가"인데요. 글레드웰은 이 책에서 어차피 용의 머리가 되는 사람들은 적으니깐 선택할 수 있다면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어서 자신감, 자기 효능감 (self-efficacy), 동기 부여을 가지고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게 좋다고 여러 케이스들과 연구 논문들을 제시하면서 주장하더라고요.  


말콤 글레드웰이 이 책과 관련해 구글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곳에서는 더 획기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글레드웰은 납득이 갈 수 있는 증거와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버드 대학을 갈 수 있더라도 하버드 대학에 가지 말고 당신이 탑이 될 수 있는 대학에 가라."


여러분은 이게 뭔 소린가 하실 수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에 붙으면 당연히 하버드에 가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죠.  글레드웰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중요한 세 가지 요소 즉 자신감, 자기 효능감, 동기부여가 향상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위치보다도 상대적인 위치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하버드에서 빌빌거리면서 중하위권에 있는 것보다 하버드보다 랭킹이 낮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상위권에 들어갈 때 당신은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니 제가 이런 길을 걸었었더라고요. 제가 목표로 했던 최고의 대학과 대학원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진학한 학교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그곳에서 탑이 될 수 있었고 제가 목표로 세우긴 했지만 꿈도 못 꿨던 미국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죠. 저는 다윗과 골리앗 책을 읽기 전에도 더 이상 학벌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학벌이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완전히 사라졌고, 학벌에 대해 재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벌이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학벌 자체는 성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거 같습니다. 제 경험을 봤을 때 그리고 제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과 책들, 연구 논문들을 봤을 때 현재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하는가가 성장에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현재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그 자리에서 성취하는 삶을 살면 학벌은 인생 성장에 있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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