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구, 애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나에게도 해줄 수 있다.
우리나라 모든 근로자에게는 중도하차할 권리가 있다.
중도 하차할 권리란 근로자가 근로 계약 기간 도중에 퇴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는 근로 계약 기간 중에도 언제든지 퇴사를 통보할 수 있다)
(다만, 퇴사 통보 시 사업주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퇴사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퇴사 예정일로부터 최소 30일 전에 퇴사를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쉽게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숨 쉴 구멍이, 마지막 보루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여러 가지 다른 사유가 분명 있을 것이나,
직장을 다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들으면
안타깝다.
직장이라는 곳은 언제든 중도하차할 수 있는 곳이다.
법에서도 보장해주고 있는 권리다.
그러나, 단순히 직장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힘들고,
일시적으로 같이 근무하는 사람 때문에 힘든 이유 등
내가 강해지면서 이겨낼 수 있는 상황들은
나 스스로 나를 잘 달래며 데려가자
나 자신이 파업하면 시간적인 낭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에게 더 잘하고, 나에게 좋은 것을 먹이자.
그리고 운동도 하고, 중도하차하기 전에 잘 달래며 나를 데려가자.
지혜롭게 달랜다. 보상도 해주자.
그토록 내가 애지중지하는 시간을 뚝 떼어서 나에게 보상으로 주자.
최고의 보상이다.
가령, 영화 한 편을 아무 목적 없이 틀어놓고 멍 때리기처럼 말이다.
나 자신의 주인으로서,
목표하는 바나, 나 스스로 선택한 직장생활을
중도하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늘 인지하면서,
힘들 때 나를 달래주는 습관을 들이며,
나 자신을 잘 데리고 목적지까지 가보는 거다.
나 자신을 설득하고 달래주고
때로는 고생한 나에게 쉼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와의 동행이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나는 자녀의 몸을 닦아주듯이
내 몸도 닦아줄 수 있다.
나는 친구에게 맛난 음식을 사주듯이
나에게도 맛난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
난 애인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멋진 말들로 치켜세우듯이
나에게도 사랑한다 말하고, 나의 멋진면들을 칭찬해 줄 수 있다.
내가
가족, 친구, 애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나 스스로에게도 해줄 수 있다.
자, 뭐부터 나에게 해줘 볼까?
음..
요즘 물가가 비싸서, 가성비 좋은 음식만 찾았는데
남에게 만원 넘는 식사도 턱턱 사주듯이
오늘 저녁은 나도 만 원짜리 넘는 한식 한 그릇을 나에게 대접해 봐야겠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슬프다. 난 나에게 이렇듯 푸대접을 해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