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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르도 Aug 20. 2024

‘개’로마 테라피를 아시나요

'꼬순내'의 치유

- 서울 안의 작은 유럽, 홍대 EDM 클럽 안.


외로울 때 나는 보컬 파트가 없는 EDM 음악이 유독 당긴다. 

인공미와 형식미만이 가득하여 사람 냄새가 나질 않는 EDM 음악은 고독할 때 듣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열치열인 것이다.)

어찌 보면 EDM 음악은 추상미술을 닮았다.  

반복되는 사각 패턴, 기습적인 사선과 낯선 대칭들, 뾰족한 첨탑 모양, 은밀한 뿔 모양, 비상하는 삼각형 등으로 평면을 기하학적으로 리드미컬하게 구성하는 현대미술처럼 EDM 음악은 그 어떤 메시지도 표제(標題) 하지 않고 오색찬란한 화음과 낯선 미분음들의 조합만으로 시공간을 감각적인 청각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 넣는다.

나는 EDM 클럽에 들어서면 언제나 마르크 샤갈의 그림이 떠 오른다. 특히 샤갈의 <창박으로 보이는 파리풍경>에서 맛볼 수 있는 구성미와 색채감은 EDM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르크 샤갈 1887~1985 러시아 화가>
 -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 AM 2.

형광빛깔 레이저 조명은 시리도록 강렬해지고, 날개 편 공작새같이 춤추는 남녀 모두가 오늘하루만 사는 나르키소스가 되어 스테이지의 주연들을 자처한다. 하나같이 입가에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나 빼고 모두 행복해 보인다. 

외로움에 위스키와 EDM이 더해지면 친구들과 함께하는 클럽 안에서도 마음은 도리어 적막해진다.      




술과 음악.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진 주말 밤은 늘 위태롭다.

이번 생을 불사를 기세로 클럽에서 밤을 지새운 다음 날엔 예외 없이 끝판왕 수준의 절대급 숙취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전소된 하루의 대가는 참혹하다.

내 안의 혈액을 장악한 알코올은 나의 육신을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조목조목 조롱한다.

그때 내 안의 모든 세포는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진다.

지금 이 시간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사실에 시시각각 절망하며, 내 다시는 술 먹지 않으리. 결심해 보지만 이미 나라는 존재는 그 존재 자체가 고통과 회한의 정수를 형상화하고 있다.

대략 48시간.

절대적인 회심을 필요로 하는 시간이다.     


바로 그때!!

나에게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났으니!

숙취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나에게 도솔이가 곰실곰실한 몸으로 다가와 코를 부비며 안부를 묻는다.

누워 실신한 채로 도솔이에게 아빠가 너무 아프다 도솔아

라고 목이 멘 하소연을 하고,

두통으로 쪼개질 듯한 머리를 사력을 다해 일으켜 세워 기어이 도솔이를 안아 올린다.      

따뜻하고 촉촉한 도솔이의 뱃살을 어루만진다.

꼬순내라고 정의(?)되는 도솔이의 발냄새에 코를 가져다 댄다.

~~~ ~~~’

연거푸 도솔이 발바닥의 꼬순내를 흡입한다.

결정적이다.

이것은 마법의 향기!!

기적처럼 정신이 조금씩 차려지고, 회심의 시간은 24시간 안팎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도솔이 발에서 피어오르는 꼬순내는 조향사들이 만들어내는 아로마테라피 저리 가라다. 

이른바 로마 테라피다.     




도솔이의 발샘새는 종합적이고 상징적이다.

아기 때 젖똥 싼 비린내와 다 자라 성체가 되어 한강 둔치를 전력질주한 날들의 싱그러운 풀 냄새와 목욕으로 덧입혀진 포근한 베이비파우더 냄새, 그리고 쉬야하다가 묻어 절여진 시큼한 그것의 발효향까지.

모든 일상의 질감을 농축한 도솔이 발냄새는 꼬순내로서 표상된다.     

꼬순내는 나와 도솔이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을 농밀하게 응축하고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아울러 고향을 잃어버린 MZ 세대들에게 도심 속에서도 푸근한 고향의 향기를 전하는 매개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강 둔치의 흙바닥과 반려견들의 발바닥일 것이다.     

한강 고수부지 흙바닥과 반려견들의 발바닥에는 생기를 잃어버린 회색 도시에 푸르른 균열을 내는 생의 싱그러움이 숨겨져 있다.  

특히 반려견들의 발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비릿한 꼬순내에는 놀라우리만큼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힘과 생명력이 감추어져 있다.  도솔이 발바닥의 꼬순내를 맡을 때 나의 관능의 촉수는 개과 동물의 본능에 연결되어 도시의 밑면을 더듬어 땅의 온기를 찾아낸다.     




결코 다시는 갱생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극한의 숙취가 지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이 새로워졌다.

다행이다. 이틀로 예정되었던 속박의 형량은 도솔이 발바닥의 마법 같은 꼬순내로 단 하루짜리 가석방으로 감형되었다. 알코올이 모두 몸에서 빠져나간 해방의 시간은 늘 새롭다.


도솔이에게 두 손 모아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나는 리드미컬하게 ㅅ책!! ㅅ책!!” 외친다.

(도솔이는 발음에 반응한다.)


‘산책’ 가자는 말에 도솔이가 누워있다가 0.1초 만에 기상하여 와 다 다 다 다' 현관문 앞으로 뛰쳐나온다.

나는 아직 옷도 안 입었는데...


~응 끄~응 끄~

~ ~ ~’

현관문을 앞 발로 긁어대며 보채기 시작한다.      


앙탈을 부리는 도솔이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일부러 현관문 앞에서 딴청을 피우며 3 분간 그 모습을 감상한다. 3분을 넘기면 안달하는 도솔이의 심박수가 폭등하여 기절할 정도가 되므로 그 이상은 무리다.

리드줄과 연결이 호환이 되는 민트색 조끼를 입히고 현관문을 나선다.

(역시 흰 페키라서 민트색이 잘 어울린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1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의 빛나는 항해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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