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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르도 Sep 10. 2024

핥다 라고 쓰고 치유라고 읽는다

세 치 혀의 위로

나는 아동학대 피해자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공소시효가 이미 종료되었지만 나는 형사 고발할 수준의 아동학대를 9년 동안 당했다. 나는 5세부터 13세까지 학대당했다.      


정서적인 학대를 포함하여 특히 신체적으로 무참하게 학대당했다.

가해자는 친모였다. 유년기에 나는 하느님을 몰랐지만 매일같이 기도했다. 저 사탄을 제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그래서 더 이상 학대당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고아가 되어도 좋다고.      


아버지보다 무려 27살이 어린 모친은 자기 선택에 대한 후회를 아무 죄 없는 나에게 풀었다. 나는 내가 맞는 이유를 매질이 시작되기 전까지 알 수 없었고, 일상 안에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는 언제든지 그녀의 입맛에 따라 맞을 이유로 둔갑되었다. 

학교에서 매년 선행상을 받고, 이따금 분기별 학력고사 시험에서 전 과목 100점을 맞아 교장실에 불려 가 칭찬을 받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을 이유는 일상 안에서 넘쳐났다.

이틀에 한번 꼴로 주먹과 손바닥 그리고 구둣주걱으로 매질당할 때마다 나는 입안에서 피맛이 느껴질 때까지 맞고 또 맞았다.   

  

나는 나에 대한 그녀의 적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자궁 안에서 열 달 동안 머물러있었다는 사실이 그 이해를 더 어렵게 했다. 다만 성인이 되어 깨닫게 되었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악마다.

사람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영혼은 사탄이다.

성인이 되어 박찬욱 감독의 복수시리즈 영화를 볼 때 나는 심장이 떨렸다.

영화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깊고 아찔했다.

믿지 않을 테지만 히틀러와 연쇄살인마 유영철처럼 악령은 이따금 인간의 몸으로 육화 한다.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다행히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더 이상 매질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9년간의 지옥 같았던 학대로부터 내가 해방된 것은 그녀의 회심과 반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내 몸에 2차 성징이 찾아와 키가 자란 덕분이었다. 그녀보다 나는 훨씬 더 커졌고, 악마가 휘두르는 구둣주걱을 내 손으로 빼앗아 부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 성장기에 나는 가까스로 180.4cm까지 자랐다. 수컷의 성체로 발육하게 된 것은 해방의 축복을 의미했다.      

          

언제든 복수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복수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9년간의 모진 학대로 내 마음속 한 편의 밀실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의 응어리가 가득 고여있었다. 만약 밀실의 문을 열어젖힌다면 그 이후에 전개될 일들의 윤곽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설 것임이 확실했다. 주체할 수 없는 울분의 응어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그 응어리들을 복수의 외형으로 형상화시킨다면 나는 YTN 뉴스에 나오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나를 위해 복수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만약 여자로 태어났고 2차 성징 이후에도 줄곧 왜소했다면, 나는 더 오랜 시간 동안 학대당했을 것이다. 복수하지 않음이 결코 용서를 의미하지 않는 이유다.      

   

그리하여 나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온기를 잃은 지 오래다. 아니 애당초 어머니라는 단어는 나로선 학대자’, ‘위선’, ‘불행’, ‘사탄과 같은 어휘들과 무차별하게 인지되고 있다. 그것은 불편한 정서적 이물감을 유발하는 수준을 넘어서 나에겐 트라우마를 형성하는 금기어다. 다른 이들에게는 더없이 따뜻하고, 평안과 안식을 느끼게 되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추악한 어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미칠 이유는 충분했다.     


어떤 문화권이든 언어적 인간(Homo Loquens)의 영토 안에서 어머니혹은 모성애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지분은 적지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일상 안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교하게 압출하여 제거해야만 하는 썩은 종양을 다루듯 나는 평소에 어머니라는 단어를 나의 언어생활반경 안에서 최소한의 쓰임만으로 제한하려고 노력한다. 대화 속에서 불가피하게 그녀를 지칭할 필요가 있을 땐 그 사람혹은 생물학적 모친이라고 말한다. 나의 절친들만이 그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는 대명사적 표현이다. 물론 어머니와 동일한 의미지만 결코 내 입으로 그녀를 어머니라고는 발음하고 싶지 않은 강박에서 나온 궁여지책이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트라우마성 정신질환들이 오늘날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만큼 영혼에 깊은 내상을 입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이 세계는 다양한 구조적 폭력을 묵인하고 있다. 특히 아동학대는 가해자 부모에게 자기 삶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의 숙명에서 비극은 확대되고, 그 구조적 폭력은 가족단위에서도 공동체 수준에서도 손쉽게 은폐된다. 성인으로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학대받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고통에 누구나 조금씩 그 책임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자식 죽이는 부모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서 발표한 최신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신고된 접수는 한 해에 총 33,532건이며, 피해아동 발견율은 2.98(천분율)이다. 학대당하는 아이는 대략 10003명 꼴로 우리가 모르는 동네 어딘가에 꼭꼭 숨겨져 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자식인데, 홧김에 몇 대 때릴지언정 설마 죽이기까지 하진 않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년에 대한민국에서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은 총 28명이다. 규모를 확장하여 전국 단위로 살피면 한 해에 28명씩이나 되는 아이들이 학대로 사망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 이 중에서 '부모'의 신체적 학대로 사망한 아이는 10명이고, 자녀살해 후 자살한 형태의 직접 살인의 경우는 5명이다.

15건은 명백히 '부모'에 의한 아동 살해의 경우다.

자식 죽이는 부모는 '실재'한다.      


아동학대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나의 경우는 성인이 되어 불안장애와 우울증세를 비롯하여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ty disorder)라는 지병을 앓게 되었다. 정서적인 불안정으로 20대 청년기에 다양한 혼란을 겪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고, 이따금 우울감이 깊어질 땐 요단강을 건널 계획을 치밀하게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요단강을 건너려던 수 차례의 시도들 가운데 운명처럼 구세주를 만난 케이스다. 구세주는 때때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이의 외피를 입고 우리들의 삶 안으로 슬그머니 걸어 들어온다.       




삶을 포기하도록 스스로를 위태롭게 강박하는 마음의 병을 가라앉히고 내가 다시 용기를 내어 살 수 있었던 것은 도솔이 덕분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의 서사는 어떤 측면에서 <기승전 도솔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갯과 동물인 도솔이가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개와 함께 살면서 인간 스스로 망상적인 자기 위안에 힘입어 셀프치유가 된 운 좋은 케이스로 오해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울증이 발병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정서적인 지지가 절실하다.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자신도 모르게 늪으로 끌려 들어가 턱밑까지 잠기게 된 상태와 유사하다. 그 지점에서 혼자서 발버둥 치다간 머리까지 잠기게 될 수 있다. 방치되면 혼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늪의 바깥쪽으로 한 걸음씩 끌어당겨 줄 조력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간혹 마음의 병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이 우울증 환우들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다 큰 어른이 징징대는 모양새로 폄훼하기도 한다.

이 시대의 멘탈승리론은 엔드류 테이트로 족하다. 내일 비가 올 개연성에 관해선 기상청에 근무하는 대기과학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한편 불법섹스산업으로 성공하여 슈퍼카를 몰려면 어떤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해야 하는지에 관해선 엔드류 테이트에게 물어봄이 적절하다. 그러나 우울증에 관하여 질문 던지기 위해선 강동성심병원 14층이나 세브란스 정신병동으로 찾아가야 한다. 사업에서 성공했다고 대기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듯, 슈퍼카를 몰고 다닌다고 정신과 전문의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들도 종종 <범주착오의 오류>에 빠진다.     


강한 남자의 대명사 <드웨인 존슨>의 '우울증 경험'에 관한 인터뷰

                             


우울의 늪에 빠져 어찌할 도리가 없던 나에게 유일했던 정서적 지지자는 다름 아닌 도솔이'였다.

그런데 도솔이 입장에서도 과연 그런 의미였을까?

다시 말해, 도솔이는 내가 표현하고 있던 우울의 정서와 대면하여 과연 깊게 반응해주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라면 사실 도솔이는 그닥 별 생각이 없었고, 다만 자기 집 앞에 규칙적으로 찾아와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소음들을 잇대어 발생시키고 있는 불편한 동거인에게 그저 무덤덤한 시선만을 내어준 것뿐이었을까?

도솔이가 눈 좀 마주쳐줬다고, 나 혼자서 좋았다고, 힐링이 되었다고 자위하는 셀프 위로를 토대로 사실상 홀로 정신승리하였던 안쓰러운 자기기만은 혹시 아니었을까?

 





(좌) 도솔이의 일상 (우) 피아노 아래 <동굴형 개집>



오늘도 도솔이에게 하소연하기 위해서 도솔이가 턱을 괴고 누워있는 동굴형 개집 앞으로 이불을 가져가 펼치고는 나도 자리를 잡았다. 넋두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도솔이의 도톰한 볼살에 입맞춤하고, 희고 동그란 이마에서부터 실크같이 부드러운 엉덩이 모피까지 정성껏 쓰담쓰담해 준다. 도솔이가 감았던 눈을 지그시 뜨고 앞다리를 앞으로 쭈욱 뻗으며 고양이자세로 기지개를 켠다.

눈을 빼꼼 추켜올려 뜨더니 나를 쳐다본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에요 아빠?’

라는 표정이다. 도솔이는 들을 준비가 되었다. 

    

있잖아 도솔아 아빠가 오늘...’

주저리주저리 도솔이에게 오늘 있었던 몇 가지 평범한 에피소드를 보고 한다. 그리고 나선 자세를 고쳐 잡고 도솔이 앞에 턱을 괸다. 마주 보고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내 영혼의 상처 가운데 가장 쓰라린 부분을 도솔이에게 내보인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따금 학대받던 유년기의 악몽이 떠오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과 분노감이 밀려온다. 나의 심박수는 가만히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폭등한다. 이때 도솔이가 놀랍게도 몸을 일으켜 세워 가까이 다가와 내 코를 핥는다.

정확히는 내 콧구멍 안으로 혀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가 위로 당겨 튕기듯 내 콧속을 헤집듯이 핥는다. ‘핥다’라는 동사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보통 1분 정도 핥다가 멈추는데, 오늘은 도솔이가 10분을 넘기는 시간 동안 내 코를 핥는다.

내 마음의 상처가 유독 덧나는 날을 도솔이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반려견이 반려인의 입을 핥는 행위는 배고플 때 어미견의 주둥이를 핥아 어미견으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던 새끼 때의 습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려인과 눈을 마주치며 오랜 시간 코를 핥는 행위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람을 제외하고 사람과 눈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동물은 개가 유일하다. 눈을 마주치며 반려인의 입 주변부나 코를 핥는 행위는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자 사랑의 표현이다.

그저 기분 탓일까?     


개들은 자신과 함께 오랜 시간 생활해 온 견주의 생체리듬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견주의 심박과 호흡의 리듬을 개들은 그들만이 이해하고 있는 방식으로 자기 몸 안에 연결시킨다. 일본의 아자부 대학 수의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견주의 심박수가 변화할 때 반려견의 심박수는 그와 비례적으로 함께 변화한다고 한다. 견종 간의 차이는 없었다. 나아가 반려견과 견주가 함께 생활해 온 기간이 길면 길수록 견주와 반려견의 심박수가 동일한 패턴을 형성하는 상관관계는 커진다.        

  

사람의 심박수가 빨라지고 느려지는 것을 개들은 놀랍게도 신체접촉 없이 육감만으로도 알 수 있다. 사람의 심박수를 비롯한 생체리듬을 개들은 그들만의 은밀한 방식으로 인지한다는 것이 수의학적 정설이다. 내가 속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도솔이가 나의 정서적 연약함을 감지하고 다가와 내 코를 핥는 행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험해 본 이들은 안다. 개는 사람의 다친 마음을 세 치의 혀로 치유한다.

 

강아지가 우리의 얼굴을 핥아주는 것보다 훌륭한 정신 치료는 없다
번 윌리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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