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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Jan 21. 2024

돈이 인간성을 지배하게 두지 마라!

<황금종이1> 북리뷰


소설 <황금종이>를 읽었다. 

13시간에 이르는 비행기 안에서 다른 책과 함께 1, 2권을 완독했다.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생살여탈을 쥐고 흔들며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는 돈'에 대한 인간군상의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묘하게 엮여 있어, 장마다 돈에 얽힌 새로운 사건과 스토리였고, 겪어보고 들어봤음직한 나와 내 주위의 사연들이어서 쉼없이 모두 완독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소설 내용에 앞서, 육필 소설가 조정래와 마지막 두 번째 작품의 주제로 '왜 하필 돈인가' 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무명의 작가일망정 나 역시 '작가'이고, 살아온 삶보다 살아갈 삶이 짧아진 시점에서 '그를 동일시해 봄'을 해 본 것이다. 




평소 조정래 선생은 자신의 집필실에 대해 '황홀한 글감옥'이라고 했다. 

하루 평균 열다섯 시간. 궁리를 반복하며 쓰다 지우기를 거듭하는 곳인 소설가 조정래의 서재는 그의 말대로라면 ‘글감옥’이다. 집필을 하는 동안은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먹고 자고 쓰기를 연속'하는 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침 7시 기상,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 아침밥, 오전 작업, 1시간쯤 낮잠, 점심 식사, 체조, 오후 작업, 저녁 식사, 뒤로 달리기, 잠깐 눈 붙이기, 야간작업. 집필하는 기간 동안 조정래가 하루를 이렇게 보내며 원고지 30장을 채우면 그제야 잠자리에 든다. 게다가 그는 컴퓨터가 아닌 수기(手記)로 집필한다. 


그는 일단 집필을 시작하면 집 밖을 잘 나가지도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집안으로 사람을 들이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유일한 벗이라고는 첫번째 독자이자, 비평가 역할을 해주는 아내 뿐이다. 하루 일과는 단순하다. 일어나 짧은 운동과 정갈한 식사, 아내와의 산책을 제외하고는 잠들기 전까지 온전히 글을 썼다. 누군가 그를 보면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다. 진짜 감옥이 따로 없다' 하겠다.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고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불평을 하느냐, 감사해하느냐 그 차이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해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그룹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즐겨하던 말이다. 언제든 그만두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수도사의 수도원은 행복의 공간인 반면, 출소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죄수의 감옥은 고통 그 자체의 공간인 셈이다. 


죄수에게 '감옥'을 만든 이유는 사방이 막힌 공간에 밀어넣음으로써 죄수에게 고통을 준다는 의미보다는 그의 여생 중 일부의 시간을 '박탈'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그 점에서 '감옥'은 '죄를 지은 인간의 시간'에 방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조정래는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에서 소설 집필을 ‘숨 막히는 노동’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 그러니까 특실 감옥인 거죠.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한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숨 막히는 노동을 견딜 자신이 없으면 작가 되기를 원치 마십시오.”


그렇다면, 집필실을 황홀한 글감옥이라 말하는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바로 자신의 생 모두를 작가로서의 삶에 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확보된 시간을 오로지 글을 쓰는데 보내기 위함이다. 



그 다음은 그가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마지막 작품을 쓴 뒤에는 여생을 아내와 함께 미뤄왔던 여행을 하고 싶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마지막 두 번째 작품의 주제로 '왜 하필 돈을 선택했을까?'  

우선 책의 첫장을 열면 만나는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는다. 


‘황금종이’라는 것!


우리가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남에게 줄 때는 쉬워도 남에게 얻기는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너나없이 가장 갖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박탈해 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무엇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력에 휘말려 얼마나 많은 비극적 연극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일까.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 중에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류가 있다. 이른바 돈과 명예를 모두 갖은 부유층과 지식인들이 금전에 관련된 범죄를 저질러 그간 이뤘던 공든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들이 그들이다. 충분히 갖고 누리고 있는 그들이, 죽기 전까지 모두 쓰지도 못할 만큼 많이 가진 재산을 두고 더 큰 욕심을 내다가 쇠고랑을 차고 노구를 이끌고 유치장에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돈은 실존이면서 동시에 부조리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한가지 주목한 점은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모두 가족과 친지, 선후배, 동료 등 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금전적 문제였다는 점. 이유가 무엇이든 '돈을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의 사연은 자꾸만 스스로를 투영하게 한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돈은 도구이자 수단일 뿐,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철학성을 확보해야만 한 번뿐인 삶을 올바르게” 영위해 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가져가지 못할 물건 때문에 '사람답게 살긴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는 어느 영화의 한 대사가 생각나게 한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내린 곳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오스트리아의 '빈' 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소설 때문일까. 


낯선 곳 낯선 풍경만큼이나 낯선 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비엔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치고받고 속이고내치는 치열한 내 나라의 삶'이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뱉듯 말했다.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책을 읽은 시간보다 더 많은 생각의 시간을 던지는 소설, 

<황금종이>는 내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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