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독서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책보다는 술과 친한 분이셨고, 명문 여고를 졸업한 엄마는 책은 좋아했지만 장사와 집안 살림을 도맡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무도 내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대학을 들어간 직후였다.
신입생이 되고 한 달 정도 지나자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졌다. 1990년 당시 대학생들은 소위 ‘학습’이라고 해서 후배들은 선배들이 추천하는 사회과학서를 읽으며 토론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무엇을 공부하는 줄도 모르면서 그 모습이 부러웠던 것 같다. 아니, 그 무리에 끼어들어 ‘나도 대학생 입네.’ 하고 으스대고 싶었던 것 같다.
막상 책을 읽자니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했다. 책 꽤나 읽는다는 2학년 선배에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물었더니 자신의 사물함으로 가서 책 한 보따리를 안겨주었다. 한 시간에 채 한 장을 넘길까 말까 한 어려운 책들, 마치 나더러 ‘넌 아예 책 읽지 말라.’ 하고 엄포를 놓으며 나를 좌절시키는 책들이었다. 근 한 달여를 고민한 끝에 전공기초 과목으로 대학국어를 강의하던 교수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교수님은 구구절절한 내 하소연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마치 무르팍 도사의 강호동처럼 단 한 문장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주셨다.
“자네는 이제부터 1년 동안 책으로 공부하지 말고 놀도록 하게!”
엥? 책을 보겠다는 제자에게 공부하지 말고 놀라니, 이 무슨 말씀이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교수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젊은 날, 하와이의 고급 리조트에서 일주일간 머물 기회가 있었다네. 하와이가 어떤 곳인가. 세계적인 휴양지가 아닌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놀러 오는 곳이지. 그런데 그들을 관찰하다 보니까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다네. 뭐 같은가?”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바로 책이었다네. 바쁜 일상을 잠시 떠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쉬려고 경치 좋고 풍광 좋은 하와이 리조트까지 와서 하는 일이 서늘한 그늘을 찾아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것이었단 말이네.”
당시 교수님은 또 언제 올지 모르는 하와이인지라 밤잠조차 줄여가며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이 다니는 사람은 리조트 안에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가만히 둘러보니 많은 이들이 책을 쌓아놓고 읽고 있었다. 휴양지와 책은 어울릴 만한 조합이 아니라고 여기던 교수님이었으니 문화적 충격이 엄청날 수밖에. 교수님은 그날의 경험을 통해 책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과연 공부하기 위해 책을 읽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들에게는 독서가 세상 그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단 말일세. 그런 게 바로 독서라고.”
교수님은 연구실 서재 앞으로 나를 이끌고 가시더니 전공서로 가득한 책장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여기 있는 소설들을 빌려줄 테니 1년 동안 모두 읽어보라’며 내게 권해주셨다.
책장에는 김용의 <사조영웅전>(이하 김영사),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등 사조삼부곡을 비롯해 <게임의 여왕>(문학수첩), <천사의 분노>(문학수첩), <악마의 유혹>(세시) 등 지금의 ‘미드’ 격인 미국 미니시리즈의 원작 소설가 시드니 셀던의 밀리언셀러 소설들,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나남), 조정래의 <태백산맥>(해냄), 김홍신의 <인간시장>(행림출판)까지 한때를 풍미했던, 아니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소설들이 가득했다.
그 후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빌린 소설책을 들고 창동역에서 건대입구까지 집과 학교를 오가는 지하철의 두 시간 동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조용히 책장에 반납하고 다른 소설을 꺼내어 나왔다. 마치 도서관처럼.
처음에는 책이 읽히지 않았다. 우선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낯설고 창피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 책을 일부러 덮은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책 읽기가 힘들었던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하기가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제 읽은 내용도 가물가물해서 수시로 책장을 거꾸로 넘겼다. 한 달 정도 지나 다시 교수님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책 읽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독서의 첫 장애물을 만났구먼. 남 앞에서 책 읽는 게 어색하다…… 아마도 자네가 독서와 담쌓고 지내던 시절, 책 읽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자네는 책을 꽤 읽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그들을 동경해 왔던 것 같아. 하지만 오늘 저녁이라도 집에 가는 길에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게. 자네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야. 혹 누군가 자네를 보고 있다면 필경 그 역시 자네처럼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겠지.
그리고 어제 읽은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되돌아가 읽지는 말게. 읽던 곳에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 날 걸세. 혹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읽어야 하네. 처음 몇 권은 ‘내가 과연 책을 읽기는 한 건가?’ 하고 느껴질 만큼 읽은 책을 기억 못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권수가 한 권 두 권 쌓이면 서서히 나아질 거야. 날 믿고 포기하지 말게. 독서는 전진만 있을 뿐 후퇴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꾸준히 읽어야 하네.”
학교와 집을 오가며 소설책을 읽은 지 두 달 정도 흘렀을 무렵, 교수님의 말씀대로 책이 제대로 읽힌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의 흐름이 파악되자 책 읽기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고, 점점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연히 남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두 학기가 흘러 이듬해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교수님은 나를 불러 내가 이미 독서를 즐기고 있다며 이른바 ‘하산을 명’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내저었다.
“아닌데요, 전 그저 교수님 책장에 있는 소설만 죽어라 읽은 것밖에 없습니다. 교수님은 뭐 하나 제게 가르쳐 주신 것이 없잖아요?”
교수님은 내게 “자네 책가방을 열어보게.”라고 말하셨다. 가방을 열자 강의노트와 필통, 그리고 읽으려고 빌려놓은 소설책이 두 권 들어 있었다.
“내 짐작 대로군. 하산할 때가 되었어. 자네는 언제부턴가 말하는 중에 ‘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대화 속에 책 제목이 툭 튀어나오는가 하면, ‘책에서 말하는데...’ 하면서 책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지. 책가방에 무거운 책을 왜 두 권씩이나 넣어 다니겠나. 한 권을 다 읽을 즈음을 대비해 여분으로 챙겨놓은 것 맞지? 바로 그거야. 이미 자네 손에는 ‘책이 붙었다’네. 책이 손에 붙었다는 건 독서습관이 들었다는 거야. 이른바 책을 즐길 줄 아는 ‘독서가’가 된 거지. 그런데 내가 뭘 더 가르치겠나? 하산해!”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1년여 동안 내가 읽은 소설은 100권을 훌쩍 넘었다. 일일이 제목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내게는 참으로 많은 책이었다. 당연히 주인공 이름도, 소설 줄거리도 헛갈렸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 있었고, 뭘 읽었는지 떠오르지 않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단 하나,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는 어느덧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 교수님은 1년 동안 재미있는 소설을 마음껏 읽게 함으로써 내게 독서습관을 길러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서는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해 주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본에서 펼쳐졌던 ‘아침 독서 운동’도 독서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아침에 10분 내지 20분 동안 책을 읽게 했는데 다른 조건은 없었다. 정해진 독서 목록도 없었고, 감상문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다만 10~20분간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단 한 가지의 조건만 빼고는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긴 셈인데 그 덕분에 ‘풀뿌리 독서 운동’으로의 역할은 충분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독서의 시작은 ‘책 읽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습관이란 시계태엽과 같아서 한번 감아 두면 평생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나는 교수님의 말뜻을 이해하고 감사함에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런 내게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이제야 독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네. 읽는다는 게 이렇게 즐겁다는 것을 자네는 일생을 통해서 처음 깨달은 거지.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독서의 즐거움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네. 지금까지는 소설을 읽으면서 읽는 즐거움을 누렸지만 앞으로는 자네가 관심을 두는 모든 분야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펴게 될 걸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지평을 넓힌다’고 하지. 읽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지. 이제부터는 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읽도록 하게. 그동안 수고 많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