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단길 일식전문점 무라
지난 토요일과 오늘 오전까지 시험공부로 빡세게 달렸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두어시간을 내달리면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거뜬히 감당할 정도가 되었다.
점수만 높아주면 되겠는데....수능 수험생들처럼 1등급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평가도 아니어서 더 이상 징징거리면 유난스럽게 엄살 떠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그냥 열심히 하는 걸로 두고,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해리단 길에 가면 <동양카츠>라고 해서 꼭 가는 돈카츠 집이 있었는데,
지난 봄 아쉽게도 문을 닫고 새로운 가게가 오픈 했다고 했다.
그곳을 가보기로 결정, 일식집 <무라>라는 곳이다.
내가 일식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아들 녀석이 돈카츠를 너무나 좋아해서
주변에 있는 돈카츠집은 모두 가 보고 맛을 기억할 만큼 좋아한다.
외식 메뉴란 게 원래 아내와 자식이 결정하는 것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무라>는 돈코츠 라멘도 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갔다.
밝지 않은 실내는 보기드물 게 차분한 것이 사진을 찍게 하는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곳 처럼 느껴졌다. 첫느낌은 '잘 온 것 같다' 였다.
테이블 마다 세팅된 키오스크에서 주문.
메뉴 가격은 대체로 착했고,
면의 굵기와 익히기의 단계를 구별하는 것은 물론
염도/농도, 맵기 까지 단계로 나누어져 있어서
대체로 짜고 맵지 않은 일식요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신경을 많이 썼다'고 느껴졌다.
가게를 얼핏 둘러보기만 해도 아쉬운 부분이 하나도 없고 목재 선택과 전체적인 색상 조명에 이르기까지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고, 요리집인데도 냄새도 없어 지레 질리지 않을 정도인 걸 보면 일본 현지에서도 만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끝내 드는 생각은 "다 필요없고! 요리만 맛나면 여긴 천국이겠네!"
첫 젓가락을 입에 넣고 느낀 점은 '칸다 소바 못잖은 곳이 생겼다!' 는 것이다.
칸다 소바는 내가 가장 손에 꼽는 라멘집인데, 워낙 국물이나 양념이 진하고 진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대체로 일식을 즐긴다면 이곳을 최고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을텐데,
<무라> 역시 훌륭했다.
<무라>는 <칸노소바>보다 훨씬 대중적이고 친근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면에서부터 국물 쪽파까지 모두 하나의 요리에 군더더기 없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고, 국물도 깊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들녀석이 좋아하는 돈카츠도 훌륭했고, 아내가 따로 주문한 코로케도 '엥? 이게 뭐지?" 하고 놀랄 만큼 빠삭하고 고급졌다. 소스에 잘 어울리는 코로케는 의외로 가장 먼저 바닥을 드러낸 메뉴.
맛이 좋아 일부러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했던 돈코츠 라멘.
마지막에 무료로 주문하는 밥(제대로 한공기)까지 말아먹으니...후쿠오카의 어느 맛집에 온 듯,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내가 주문한 탄탄멘도 맛있었다고 하던데,
나는 일부러 맛보기를 관뒀다.
내가 주문한 요리가 완벽한데 굳이 입맛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만큼 맛있게 잘 먹었단 소리!
맛있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예의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 걷기였다.
더운 날씨 탓에 바닷물은 그리 시원하지 않았지만, 바닷바람과 함께 발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충분히 시원하게 해줬다. 게다가 철썩 대는 오디오는 또 어떻고~
새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보면서 눈이 다 시원해졌고,
파도소리에 귀도 뻥~ 뚫렸다.
바닷물에 잠긴 모래를 밟으며 오감도 깨어났다.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룽고 한 잔 하며 포스팅을 하고 있다.
이보다 더 훌륭한 휴일 보내기가 있을까 싶다.
몇 시간 호강을 했으니,
이제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
하~ 품이 나온다.
쪼금만 잤다가 일어날까? 하는 유혹이 날 달래고 있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