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 다 망친다.
좋은 결과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야 왜 모르겠냐마는 그 마음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아이의 책읽기는 느리고 느린 거북이 걸음 같다.
처음 아이가 책을 읽을 때를 보면 책을 보는 것인지 읽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대충 대충 몇 장씩 넘기다 말고, 다 읽었다고 하는데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고 그런 아이를 위해 부모가 뭔가 해주고 싶어도 딱히 해줄 것이 없다.
그래서 학원을 찾고, 학습지를 찾고, 인강을 찾더라마는
사실 아이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저 부모의 조급함을 약간이나마 해소시킬 뿐이다.
아이가 책을 붙잡고, 들춰보는 것은 거의 혁명같은 일이다.
더 재밌고 혹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책을 잡은 것도 혁명같은 일이고,
단 10분이라도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는 것도 혁명같은 일이다.
글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으며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머릿속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게 결코 쉽지 않고 힘든 일이다. 이 일이 힘들고 귀찮아서 어른들도 책을 읽지 않는 것 아닌가.
참고로 대한민국 성인 열명 중 여섯 명은 일년 동안 한 권도, 단 한 권도 책을 읽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는 게 혁명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렇게 혁명같은 일을 하고 있는 아이를 두고 책을 느리게 읽네, 쉬운 책만 읽네, 읽어도 남는 게 없는 것 같네, 하며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학원을 뒤진다. 책을 읽지 않는 부모가 순전히 제 조급함 때문에 억지로 거액을 쓰며 그나마 부족한 아이의 시간을 또 덜어서 학원에 쏟고 있다.
대충이라도 아이가 책을 붙잡고 있다 보면 머잖아 제대로 책을 읽을 것이고, 부모가 골라준 책을 억지로 읽던 아이가 머잖아 스스로 책을 골라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사달라 한다. 그 '머잖아'라는 시간 속에 아이의 책읽는 습관이 들어가고, 책을 읽는 맛을 알아가는 순간들이 들어 있다.
잘 모르면 조급해진다. 조급한 마음이 들면 잘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게으르기까지 하니 남에게 맡긴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조급해지면' 서두르게 되고, 서둘러서 하는 일이 잘 될 일이 없다. 조급하면 다 망친다. 어른들이야 망치면서 사는 게 일이라지만, 나의 조급함 때문에 아이가 망친다면 그게 될 일인가.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