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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Sep 12. 2024

얘야, 날 닮아 미안해




나는 안경을 자주 닦는 편이다.


다른 사람은 얼마나 자주 닦는지 확인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자주 닦는다고 느낄 만큼 닦는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안경을 썼는데, 안경알이 지저분해서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뭔가 말이 되지 안잖아' 라는 생각이 든 이후 부터 지저분하다고 느끼면 안경알을 닦기 시작했다. 


기왕 안경을 닦을 바에는 깨끗하게 닦는 게 가장 낫다. 

티셔츠나 휴지, 수건 등으로 어설프게 안경을 닦다 보면 생활기스가 많이 생겨서 

나중에는 오히려 더 시야가 뿌옇게 보이게 된다. 

게다가 안경을 닦던 흔적이 남은 안경알을 보는 일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그렇다고 해서 안경알을 깨끗이 닦는 방법 또한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세수를 하면서 얼굴을 닦는 방법 그대로 하면 된다. 

흐르는 수돗물에 가져가 대충 한 번 닦으면서 먼지를 흘려보내고 

액체비누나 비누거품을 손에 뭍혀서 안경알을 돌리듯 칠해준 뒤 

비누거품이 잔뜩 묻은 안경알을 다시 흐르는 물에 대어 거품을 흘려주면 된다. 

운이 좋으면 그 과정에서 물방울 하나 없이 깨끗한 안경알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세척한 안경을 안경다리 두개를 겹쳐 손가락에 끼운 뒤 무심히 툭툭 털어주면 90 퍼센트는 세척을 한 셈이다. 안경 전용 수건으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해 주면 정말 깨끗한 안경알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이 흔한 방법을 굳이 열 몇 줄 되는 글로 남기자니 부끄러울 정도이지만, 

주위를 잘 살펴보면 안경알이 깨끗하지 않은 사람을 의외로 많이 만나게 된다. 

물론 내가 그를 보기 바로 직전 안경알이 오염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


안다고 해서 모두 이뤄지는 건 아니다. 

결국 작심하고 시간을 내고 몸을 움직여 행동할 때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안경알을 닦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깨끗한 시야를 하루 종일 확보할 수 있고 상대로 하여금 깔끔한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다. 

아울러 안경알을 자주 닦다 보면 자연스럽게 안경관리를 꾸준히 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좋다. 




매일 아침 아이가 등교하기 전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아이의 안경알을 

내 안경알을 닦듯이 닦아준다. 아니 오히려 더 깨끗이 닦으려고 하는 것 같다. 


부모를 잘못 만나 일찍부터 안경을 씌워서 미안한 마음도 한 몫 하지만(노래 Still Fighting It 이 생각난다, "아들아, 날 닮아 미안해") 아이가 하루 종일 학교에 있으면서 시원한 시야를 확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닦아 준다. 






처음 안경을 닦아주었을 때 아이는 "너무 너무 깨끗해~~!!"라며 무척 좋아했다. 

그 말을 다시 듣고 싶어서(칭찬은 게으른 아빠도 부지런하게 만든다) 매일 해주다 보니 

이젠 깜빡하고 빼먹기라도 하면 "아빠, 안경이 왜 이렇게 더러운거야?" 한다

(인간은 원래 못됐다, 받기를 반복하다 보면 당연한 줄 안다).






일본 작가가 쓴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은 많지 않다> 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책 내용을 절반 정도를 한 책인데, 자라는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을 기록한 개인적인 에세이다. 

아이를 챙기면서 '귀찮거나, 힘들어서 하기 싫을 때 마다' 이 책 제목을 떠올린다. 그러면 어디선가 남은 뒷심이 생겨 꾸역꾸역 하게 된다. 






사람들은 '부모가 아이를 기른다'고 말하지만, 한편 아이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아이는 자라는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준다'가 된다. 서양 부모가 성인이 된 자식을 훌훌 떠나 보낼 수 있는 것도 '네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충분히 행복했단다. 이제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마음껏 살거라' 라는 마음이 생겨서란다. 

그렇게 놓고 보면 아이가 자라는 매일의 모습을 놓치는 건 정말 아까운 일이다. 

내 아이가 자라는데 관심을 둘 사람은 이 세상에 부모가 유일하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는 매일을 지켜보는 '유일한 목격자'여야 하고 '단 한사람의 증인'은 부모의 몫이다. 


오늘 아침 6시 30분에도 아이의 안경알을, 어제처럼 정성스럽게 닦아줬다. 

내친 김에 내 안경알도 닦았다.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은 많지 않다'고 또 되뇌이면서...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 생각을 적은 글이다.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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