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등교 준비로 바쁜 아침.
신호등 앞에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
배가 고파서 아이와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패스트푸드점에 들렀을 때.
아이들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화를 내는 대신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대화했을 때.
소파에서 영화를 보던 어느 주말 오후.
이런 순간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결국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된다.
삶의 배경 소음 같지만 실은 보잘것없는 시간의 정수다. 당신이 그 순간을 제대로 바라보고 푹 빠질 수 있다면, 그 순간은 중요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된다.
이런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당신의 마음이나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게 입중하자. 현재를 희생하면서까지 미래를 너무 불안해하거나 열망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자.
사소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자. 왜냐하면 사실 사소한 시간이 진짜 의미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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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나는, 많이 아팠다.
병원은 생존확률이 5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불잉걸을 안고 한 달을 살아가는 건 매일 매일 죽었다 깨어나는 것 처럼 힘든 날이었다. 개인적인 심리적 공포는 둘째였다. 어쩌면 가족과 영원히 헤어질 수 있다는 공포야말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극악의 공포였다. 그 때 내 아이는 5살 이었다(이 때의 기록은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다).
수술날을 손꼽아 헤아리던 어느 날,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아동 뮤지컬을 본다고 했다. 네 다섯 아빠들과 함께 극장에 갔는데, 아이가 예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가 심장이 '쿵'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는 무너졌다.
다른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앉아 있는데 아이 홀로 사진을 찍는 나를 향해 바라보는 모습은, 어쩌면 내가 없을지도 모를 세상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흐느끼는 나를 보고 영문을 몰라 당황하던 아이를 꽉 끌어안고서 나는 맹세했다.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너를 홀로 남겨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수술 후 깨어나면 죽을 때 까지 너를 위해 살 거야!'
매일 아침 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여 학교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잠이 들 때 까지 함께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날의 맹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를 힘들고 피곤하고 귀찮은 생각이 들 때도 적지 않지만, 이내 '그 날의 맹세'를 떠올리고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이 맹세 덕분에 나는 7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몇 배가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낼 작정이다. 내게 하루 하루는 '내 아이와 함께 하기를 허락한 시간'이다. 오늘이 어제 같고, 또 내일 같을 반복된 사소하고 평범한 일과 시간들은 내겐 '기적'같은 것들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스티비 원더가 딸이 태어나자 단 1분 동안 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는 수술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정밀검사 후 포기했다), 그 안타까운 경험으로 "isn't she lovely" 라는 노래를 만든 것처럼 모든 부모에게 '내 아이'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하다.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가끔 잊을 뿐이다. 부모란 직업은 원래 그런 거니까.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