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잘 자라길 바란다면
세네카는 부(富)를 "중립적인 것"이라고 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있으면 좋다는 뜻이다. 그의 말이 맞다. 돈은 어떤 것들을 더 좋게 만든다.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확실히 더 낫다. 하지만 돈이 마법처럼 자녀에게 멋진 어린 시절을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돈은 자녀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자녀에게 고통이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자녀들이 바라는 것을 적은 목록에 돈은 최우선 순위에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당신이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당신이다. 1950년대의 인상 상담 연재 컬럼인 디어 애비Dear Abby(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조그만 잡지를 사면 가장 먼저 읽은 글이 그의 칼럼이었다 - richboy)에는 이런 말이 나왔다.
"자녀가 잘 성장하길 바란다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두 배로 늘리고,
아이에게 쓰는 돈은 절반으로 줄이자."
돈을 지불하고 자녀 곁에 있어줄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부탁할 수는 없다. 물론 돈은 어떤 일들을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돈으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나 과외선생님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직접 키우고,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며, 자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에 대한 증거는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위인들이 큰돈 없이도 훌륭하게 성장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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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내와 나는 "우리가 아이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해 줄 마지막 증인이 되자." 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가 보이지 않아서 우는 경험을 남기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것들은 내 경험 속에서 우러난 다짐이었다. 내 부모는 어렸다. 주위 어른들이 '애들이 애를 낳았다'고 말할 만큼 무척 어렸다. 그 덕분에 건강한 몸을 타고 났지만, 그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저희들이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던 탓에 나는 늘 할머니와 지내야 했다. 어릴 때는 '원래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지만, 머리가 굵어지자 '부모의 역할'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낮잠을 자다 깨어 보니 방안에 홀로 남겨진 상황을, 나는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그 때 무척 서럽게 울었다. 목이 쉬도록 울었다. 당시 달랑 방 한칸이었던 '우리집'이었지만 갑자기 운동장처럼 커지고 울다 보면 갑자기 관처럼 작게 쪼그라들어서 또 울었던 기억, 부모의 '부재감'이 준 공.포. 였다.
아이가 생긴 후 가능한 한, 최대한 아이 곁에 있기로 했다. 내가 바쁘면 일을 줄이고, 아내가 바빠지면 내 일을 또 줄였다. 방송을 줄이고, 강연을 줄이고, 강의를 줄였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티없이 잘 자라는 아이가 내 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학원과 과외를 보낼 돈을 버는 대신 아이 곁에서 공부를 봐 주고 맞벌이 하느라 이모와 할머니를 두는 대신 투박한 손으로 직접 밥을 먹이고 집안을 치우니 아이가 잘 자란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남이 만든 콘텐츠를 보는 대신 휴대폰 없이도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며 구독자 늘리는 재미를 즐기고, 그래도 심심하면 책 읽고 신문 읽고 피아노를 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학교는 친구들이 많아서, 급식이 맛있어서 즐거운 곳이고, 집은 부모가 늘 곁에 있어서 편안한 곳이라고 아이는 말한다.
앞으로 아이가 자라면 그 말이 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3월 21일자 <데일리 대드>를 읽으니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이는 것 같아 위로가 되고 보람이 났다. 내일은 또 어떤 글에서 힘을 얻을지 기대된다. 이 책, 정말 정말 좋은 책이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