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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는 서로에게 유일한 증인

by 리치보이 richboy

자녀에게 매일 물어야 할 질문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친절을 베풀 기회가 있다." -세네카



우리는 아이들에게 항상 질문한다.


"학교는 어땠어?

야구 연습은 어땠어?

말썽은 안 피웠니?

선생님이 네 수학 점수 보고 뭐라고 하셨어?

아이들이랑 재밌게 놀았고?"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아이들과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걱정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대답이 우리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은 이런 질문들이 부모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세상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똑똑하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던지는 이런 질문들ㅇ르 하찮은 잡담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다이애나 로스가 트레이시 에리스 로스에게 하루가 어땠는지 물어보는 방식이 좋은 예다.


하지만 여기 또 다른 예가 있다. 자녀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는지, 주어진 일을 잘 해냈는지, 재미있게 놀았는지 물어보는 대신 자녀가 착한 일을 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오늘 어떤 친절한 행동을 했니?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했니?

오늘 누구를 도와주었니?"


이런 질문이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생각해 보자. 자녀는 공감의 렌즈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그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한다. 부모의 질문으로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다. 부모는 얼마나 많은 정답을 맞혔는지보다 얼마나 옳은 일을 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방식으로 자란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좋은 곳으로 변할지 생각해 보자.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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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40629_152547211_05 (1).jpg 지난 해 비오는 프라하의 밤



위의 글은 아내가 아이의 숙제를 봐 줄 때 꼭 하는 일이 적혀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막 6학년을 시작한 어제까지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하는 질문과 대답인데, 이런 방식이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매일 같은 질문을 하길래 '네가 궁금증이 많은 엄마를 만나 욕보는구나' 생각했었다. 난 어릴 적 내 부모에게서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지난 해 아이의 연필통에 담긴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힌 특별한 메모를 보고 매우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오늘 있었던 일들 중에서 엄마한테 할 말을 요약해서 적어놓은 것이었다. 마치 그런 일이 있을 때 마다 적었는지 3~4 장을 필통에 붙여놓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지금껏 아이가 학교에서 생긴 일로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거나, 학교에 가기 싫다던가, 공부가 하기 싫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매일 엄마와의 대화로 아이가 그날 겪으며 생각한 것, 궁금한 것들을 해소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내 역시 담임선생님의 성함은 물론 아이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아이와 누가 친한 지 누구를 별로로 생각하는지,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난다고 놀림을 받는 아이는 누구인지, 어떤 여학생이 내 아이에게 자꾸만 귀찮을 만큼 말을 거는지도 아내는 알고 있었다.


아이는 1학년 때부터 숙제를 하면서, 저녁 밥을 먹으면서 아내와 두런두런 이야기했기에 마치 숙제처럼 '엄마와 당연히 해야 하는 루틴' 정도로 알고 있다. 아내는 자기대로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수업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이의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부모는 아이의 유일한 증인'이라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자녀가 자라 성년이 되면 집을 떠나도록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정이 많은 부모들은 "어떻게 생떼같은 자식을 성인이 되었다고 독립을 시키냐?" 며 서양의 부모들은 무정하다고 까지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어보면 깜짝 놀랄 사실이 숨어 있다. 부모는 자식이 성년이 되는 것을 정말 안타까워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이렇게 말한다.


"얘야, 우리는 네가 태어나서 자라서 성년이 될 때 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보고 기쁨을 누렸단다. 넌 정말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기억을 주었단다. 정말 고맙다.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너의 기쁨을 찾아 나서거라."


흔히 우리는 아이를 키운다고, 사교육에 많은 비용을 쓰면서 투자한다는 말까지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정작 아이는 매일 매일 자라고 변해가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부모의 삶에 많은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기억을 매일 선물해 주고 있다. 그 시간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하면 아이와 겪는 자잘한 갈등 마저 선물이 되지 않을까. 뒤집어 생각하면 아이 역시 부모에게 유일한 증인이 되지 않을까. 아이와 부모는 서로에게 유일한 증인일지 모른다.

비록 어제도 유튜브에 정신이 팔린 아이 때문에 야단치고 말대꾸를 들으면서 속을 썩었지만 말이다.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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