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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엄청 혼난 아이가 다음날 날 보고 웃는 이유

by 리치보이 richboy


고개를 들고 다시 한 번 시도하자



"이제 당신은 완벽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 존 스타인벡



완벽한 모습만 보이는 부모는 없다. 어떤 부모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때로 일을 망친다. 우리는 부족하고 실수를 한다. 이성을 잃고 인내심이 바닥나기도 한다. 우리는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기도 한다.


당신은 일을 망쳐버리고 자녀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는 느낌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이 있을까?


파남 스트리트 라는 인기 블로그의 설립자 셰인 패리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느 날 밤 감정이 격해지고 지친 상태로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이성을 잃은 날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날 엄마가 해준 조언은 아직가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오늘 했던 실수를 내려놓은 법을 배우지 못하면 내일은 더 큰 실수를 저지를 거야. 잠을 좀 자고 내일 다시 시작하면 돼."

나는 요즘도 아이들과 힘든 날을 보낼 때면 여전히 엄마의 조언을 떠올린다. 내일 아침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당신은 어제로 돌아가서 실수를 되돌릴 수 없다. 아이들 앞에서 당신이 이성을 잃었던 때나 후회되는 말을 했을 때를 지워버릴 수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제보다 훨씬 더 멋지고 긍정저긴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 뿐이다. 지금 이 한순간이 당신의 전부가 아님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래 내일 다시 시도해 보자.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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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후우~ " 하고 큰 한숨을 쉬게 한 명문,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글인지 모른다. 만약 내가 같은 질문을 돌아가신 우리 엄마는 내게 뭐라고 말 할까도 잠시 생각하게 했다. 필경 엇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가 막 태어나고, 고사리 같은 손을 엄지와 검지로 매만지며 가진 생각은 '완벽한 아빠가 되어 줄게' 였다. 그리고 채 다섯 시간도 되지 않아 아이를 닦아줄 물티슈를 달라는 아내의 요청에 '낮잠을 깨운다'고 화를 내고 뒤돌아 다시 잠들어 버렸다, 젠장.

그 후 아이가 자라는 시간만큼 '아빠는 완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초등 6학년이 되어 이제 거의 머리가 커져버린 아이는(사람의 뇌세포는 초등 졸업 때 최고가 된다고 한다), 간혹 아빠를 딱하게 보기도 할 정도가 되었다(부디 아빠 같은 아빠가 되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마음은 갖지 말기를...).


어쩌겠는가, 아빠가 처음인 걸(그렇다고 아빠를 여러 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시행착오란 게 필요한 게 아닌가. 문제는 시행착오를 마칠 때 쯤 되니 아이가 훌쩍 커버려 나를 평가할 수준이 되었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경제학이 끝내 비판받는 대목이 '인간의 선택이 합리적이다'는 전제 때문이 아니던가(행동경제학도 그래서 탄생했고 어느덧 주류가 되어간다마는). 인간이란 태생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즉 완벽하지 못하단 소리다. 그런데 애비라고 별 수 있겠는가. 곰곰이 돌이켜 보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자라면서 부모와 가족과 부대끼면서 점점 인간이 되어 가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점점 앞뒤좌우를 살피면서 '개똥철학'일망정 철학자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사실 애비로서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바보 같았다'고 인정하는 것도 큰 성찰이라고 본다마는, 아니면 말고.


나는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을 하나 가지고 있다. 가족이든 친구든 내게 잘못하면 '그가 나에게 최근 잘했던 것이 있던가?' 살펴본다. 그래서 '내게 잘한 점'이 있으면 그걸로 '내게 못한 것'을 덮는다. 다시 말해 내게 많이 잘했던 사람이라면 두어 번 잘못한 것들은 왠만하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덮어버린다. 그래서 '사람이 둥글하다'는 평을 받는 편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인지, 내가 아이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잘하는 일을 두 개 세 개 만들어서 더 잘하려고 애쓴다. 이렇든 저렇든 만날천날 시행착오가 아니던가.



다행인 건 '아이들은 매일 밤 부모를 용서하면서 잠든다'는 것이다.



왠지 울컥 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싶겠지만 곱씹어보면 나도, 친구도 아이였을 때 매일 밤 하던 짓 아니던가(안 그랬으면 숱한 밤을 가출하지 않았을까). 제 뜻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껏 부모를 원망하며 울다가 잠든 아이가 아침 눈부비며 웃는 모습을 보면 아기천사 같다가도 '얘, 바보 아냐?'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게 실은 간밤에 내 아이가 나를 용서한 덕분이다.

내 경우를 보면 한동안 밥빌어먹으려면 어쩔 수 없는 '호구지책'이기도 했다마는, '그 때 부모가 나한테 그럴만 했지' 라는 뒤늦은 후회의 날도 많았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부모가 저렇게 날뛰는 데는 지금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음' 비슷한 통찰이 생겨서다. 이런 것들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아니던가.


옛날 우리 엄마는 이런 말을 몇 번 했다.

"우리 할머니가 나더러 '딱 너 같은 자식 낳아라, 그래야 내 맘 알 것이다' 하더니 내가 널 낳았구나!"


그 땐 내가 자기 마음에 든단 소린지 아닌지조차 몰랐지만, 지금은 실제로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말 안듣는 아들놈을 보며 몇 번인가 되뇌었던 말이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되뇌일지 모르겠지만, 아들놈은 그 시절의 나보다 더 나은 놈인 것만은 확실하다(나보다 훌륭한 아내 덕분이겠지만, 그런 엄마를 아내로 만든 내 덕분이란 걸 아들이 알아주기를...)


일주일에도 몇 번을 아이에게 한 말과 행동을 후회한다. 하지만 아이가 한 개 아프면 그 때 마다 부모는 열 배 스무 배 더 아프더라. 그래서 결론은 아이한테 왠만하면 뭐라고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내가 더 아프니까.


한편 생각해 보면 명문대 하고 훌륭하게 자란 사람들이 인터뷰 할 때 "우리 부모는 나한테 한 번도 혼내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더만, 뒤집어 말하면 그들의 부모는 무쟈게 아픈 게 싫었던 사람이 아닐까...하는 얼도당토 하지 않은 생각도 해 본다.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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