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어 읽을 만큼 소중한 이 글은 참고로 100년 전 톨스토이 할아버지가 쓴 글이란 걸 감안해야 한다.
그 시절 할아버지의 눈에 비친 당시의 부자들은 잘 먹고 잘 살아서 '위장을 혹사하는 부자'라고 칭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부자는 그 시절과는 정 반대다. 오늘날 부자들의 목표는 '장수' 즉 건강하게 오래 살기에 꽃혀 있다. 투박하고 거친 음식을 일부러 찾아 먹고, 그 마저도 지방으로 갈까 염려되어 쓸데 없이 많이 걷고 운동해서 태워버린다. 비단 건강 뿐 아니다. 라이프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명품 브랜드 에 중독된 한 사내가 있었다. 스스로를 두고 “나는 한입 베어먹은 사과(Apple Macintosh)이고, 말을 탄 폴로 선수(Polo)이며, 눈 덮인 산(Evian)이기도 하다.” 라고 말한 바 있는 그 사내는 무엇을 사든 그는 해당 분야의 최고 명품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가 추종하는 브랜드에서 신제품이 출시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들였다. 그의 집은 포장도 뜯지 않은 명품 상자들로 발을 디딜 틈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도심의 한 광장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브랜드 제품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았던 명품 브랜드 제품들이어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것이어서 이러한 명품 브랜드 화형식은 자신을 불태우는 소신공양과 다름 없었다. 그것들을 태워버리기로 한 이유도 간단하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브랜드를 남들에게 줄 수 없다는 강한 집착때문 이었다. 여기서 이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왜, 도대체 왜?"
명품들은 말한다. '날 가져요, 그러면 행복이 와요', '날 가질 수 있는 자는 선택된 사람들이에요. 끕이 달라진다고요' 그는 그 말을 믿었다. 명품들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행복해질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해야 할 행복감은 돈을 지불 하고 백화점을 나설 때 느껴지는 찰라의 순간일 뿐, 오히려 허무함만 더해 갔다. 급기야 '나는 명품 브랜드에 속은 중독자였다'고 깨닫게 된 그는 자신이 추앙한 브랜드란 브랜드는 죄다 태워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 사내의 이름은 닐 부어맨이고, 그는 이 날의 브랜드 화형식 이후 명품은 물론 블랜드로 된 제품은 모두 거부하며 살기로 했다. 말 그대로 노 브랜드 라이프No Brands Life 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처절한 '브랜드 없는 일상'을 기록에 담아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나는 그가 '브랜드 광고에 속았다'은 것이 아니라 명품을 휘감고 사는 사람들을 동경했다고 생각한다. 얼핏 훔쳐본 부자들, 셀럽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면서 그들이 입고, 먹고, 즐기는 명품들이 그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은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는 자신이 사들이는 명품 브랜드들을 바라보면서 남들이 자신을 부자로 봐 주는 '부자인 척' 살아가는 삶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무엇인 척 하는 삶'은 딱 그 정도에서 그칠 뿐이다. 부자인 척 한다고 진짜 부자가 아닐 뿐더러 남들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소득을 능가하는 소비 때문이다.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살다 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였다."
얼핏 보이는 부자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데서 사는 것'을 보고 '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부러워했다면, 심하게 착각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 해야 할 것은 그들의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이다. 그것부터 우선 해결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