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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서 잘 놀다 와!

by 리치보이 richboy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우리는 자녀의 키를 선택할 수 없으며, 자녀 역시 자신의 키를 선택할 수 없다.

아이의 키가 클지 작을지, 반사 신경이 빠를지 느릴지, 근육이 강할지 약할지, 순발력이 뛰어날지 부족할지는 아이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아이들은 코치가 자신을 예버할지 눈엣가시로 생각할지 선택할 수 없다.

그들은 교실이나 라커룸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통제할 수 없다. 셰릴 스트레이트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에 "당신은 당신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카드에 대한 권리가 없다"라고 썼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아이들이 항상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어떻게 이 과정을 즐기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얼마나 최선을 다할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할지를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연습이나 경기, 중요한 시험이 끝난 후에 부모가 하는 질문과 아이들을 평가하는 기준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 "너희 팀이 이겼니?" 혹은 "시험에 통과했어?"가 아니라 "즐거운 시간 보냈어?" "최선을 다했니?" "준비과정에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라고 묻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패를 통제할 수 없다.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과 세상에서의 위치(지리적으로 혹은 사회경제적으로)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패를 어떻게 쓸지는 아이들(혹은 가족들)이 결정할 수 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얼마나 최선을 다할지도 우리가 결정한다. 어떤 사람이 될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주자.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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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올 해의 글 중에서 가장 훌륭한 글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상황, 아이와 자주 일어나는 갈등의 주요 이유가 이 글의 주제에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는 라이언의 말에 부모, 특히 학부모라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꽤 차이가 있다. 자녀가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마음껏 뛰어 놀고 밥 잘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푹 자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큰 맘 먹고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하려 해도 같이 놀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가는 바람에 놀이터가 썰렁하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놀려면 애들이 많은 학원에 보내야 한다', '친한 친구랑 어울리게 하려고 같은 학원에 보냈다'는 학부모의 흔한 말이 현실을 잘 말해 준다. 좋은 학원은 떨어져 있고, 그래서 모두를 취하려면 부족한 건 시간, 엄마 아빠가 라이딩 하는 차 안에서, 혹은 편의점에서 간식을 먹고 저녁은 학원을 마친 후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먹었으면 좀 쉬어야 하고, 곧이어 숙제와 학원에서 내준 과제를 하고 나면 자정에 이른다.

틈만 나면 스타트폰을 들여다 보거나, 온라인에서 친구들과 고함을 치며 게임을 하는 것으로 '논다, 쉰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는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한 곳 남았다. 바로 '학교'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많다. 부모 대신 선생님이 자녀를 통제하며 학습을 시키고, 운동을 시키고, 올바른 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준다. 천사를 대신해서 엄마가 생겼다는 말처럼, 요즘 같은 세상엔 피곤하고 혼란스러운 부모를 대신 선생님이 있다고 나는 요즘 느낀다.


교사와 학부모 면담이 있을 때 나는 "선생님께 맡깁니다. 잘 못하면 혼찌검을 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선생님께 그리 부탁했다고 충분히 경고한다. 선생님이 많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잘 못보고 오해했다고 하더라도, 설령 잘못 판단했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 선생님을 믿고 따를테니 그리 알아야 할 거라고 말한다. 그 순간 아이가 느끼는 선생님의 자리는 부모와 같아진다는 것을, 선생님 역시 내 아이에게 시선이 한 번 더 간다는 걸 나는 안다. 이렇게 말하는 건 '현명한 부모의 꾀'가 아닐 수 없다.



classroom-2787754_1280.jpg @pixabay



아이의 말을 듣다 보면 사사건건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이른바 클레임을 거는 학부모가 많다고 한다.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그럴수록 내 아이에게 좋을 게 없다. 실컷 클레임 걸고 난 후에 '이러다 내 아이만 찍히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맞다, 그게 바로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런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장기간 동안 앉아서 공부하고, 진짜 사회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학교다. 학교 정문에 들어가는 순간 부터 하교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학습'이란 걸 알아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 부모가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고 그 부작용은 음으로 양으로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는 눈이 있고, 생각하는 머리가 있는 같은 반 아이들이 그것을 직접 목격하기 때문이다.


라이언은 말한다, '나에게 올 카드를 통제할 방법은 없다'고. 그렇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고, 어떻게 지낼지는 부모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길 때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알려주고 아이 스스로 대처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 시선과 생각으로 아이를, 학교를 보면 훨씬 더 수월하게 문제가 풀리는 법이 아니던가.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창피당하지 않게 실내화를 두 켤레를 사 주고 매주 번갈아 신겨준다. 그 후 나는 아이로부터 "너는 도대체 실내화가 몇 켤레냐?"고 어느 여학생이 묻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매일 아침 등교 전 아이의 안경을 깨끗이 닦아준다. 아이가 눈이 나쁘도록 유전적 환경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해 주는 건데, 아이는 이 루틴을 좋아한다. 새 마음, 새 기분이 든다고 한다. 이 정도 마음씀이면 아이도 안다, 제가 학교가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른다면, 늦더라도 나중에 알게 된다. 부모는 그러기를 바라면서 매일을 지킬 뿐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잘 놀다 와."


"공부 열심히 해!" 는 우리 때 중진국 부모가 그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이젠 구닥다리니까 쓰지 말기를. 게다가 친구, 자네가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아이는 제 맘대로 공부할 테니까 헛수고하지 말기를. 자네도 그걸 잘 알지 않은가? -richboy



teacher-4784916_1280 (1).jpg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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