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글을 읽으면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분노와 화' 이다.
분노는 원인이고, 화는 결과물이다. '내가 누구로부터 자극을 받아 분노가 일어났고, 결국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는 건데, 문장의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를 낸 사람'을 지적하고 있다. '남으로부터의 자극'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 자극에 대해 분노를 일으키느냐 침착하느냐 하는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약 이러한 남의 자극에 대해 분노가 일어났다면, 또 다시 이에 대해 '화를 내어 대응할 것인가, 화를 내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두 번째 '나의 선택'이 주어진다.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상황 중에서 '눈에 보이는 상황'은 '화를 내고 있는 나' 뿐이다. 그래서 결국 '화를 내고 있는 사람'만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정말 억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앞선 바와 같이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해 내가 반응할 수 있는 '두 번의 선택권'이 있기에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마는' 사람만 '가해자'가 되고 만다. 피해자일 수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결국 화를 내는 것을 피해야 하고, 그러려면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곧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비대면의 시대, 주된 외부로의 자극은 '카톡과 문자, 댓글'이 주가 된다.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텍스트 형식은 통화보다 훨씬 편하다. 하지만 통화만큼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는 점과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 마음대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되도록 짧은 문장으로 하기에 디테일 하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 오해를 일으킨다.
분노는 선입견이 있다. 즉 '분노하고 싶은 사람'이 주로 분노한다는 점이다. 어느 노래 가삿말처럼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분노의 인자를 가진 사람이 주로 분노를 일으키고 화를 내곤 한다. 그래서 화를 내는 사람만 유독 자주 화를 낸다.
주위의 자극에 휘둘리지 말라.
설령 자극을 받거든 침착하라 그리고 이 같은 자극을 왜 내게 하는지 분석하라
그러면, 화낼 일이 적어진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 하자.
화를 내도 지는 것이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