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리(窮理)라는 말을 좋아한다. 발음도 예쁘게 ‘궁니’라 읽는 이 말은, 일이나 물건(物件)을 처리하거나 밝히기 위하여 따져 헤아리며 이치(理致)를 깊이 연구하거나, 좋은 도리(道理)를 발견하려고 이모저모 생각하는 것이 궁리다.
독서 리뷰의 장점을 들라면 나는 우선 이 말을 하고 싶다. 독서 리뷰는 책 읽은 이를 궁리하게 한다. 그래서 ‘다 읽어서 좋았더라’에서 그쳤을지 모를 독서의 기쁨을 연장시킨다. 독서 리뷰는 읽은 이로 하여금 ‘뭘 읽었더라?’ 궁리하게 하고, ‘작자(作者)가 뭐라 했더라?’ 페이지를 떠들어보게 한다. 그리고 ‘난 뭘 배웠더라?’ 또 궁리하게 한다. 그 마지막에 끄적거리는 것이 독서 리뷰다. 한마디로 독서 리뷰는 ‘독서 후 궁리한 끝’이다.
독서 리뷰는 지혜를 낳는다
‘포기하지 마라’의 대명사 윈스턴 처칠은 독서 후 성찰에 대해 "책은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서한 내용 중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소화를 해서 마음의 양식으로 삼느냐가 중요하다.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정신작용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독서는 오히려 빈 수레와 다를 바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공자는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고 했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이러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좋다고, 읽었으니 그럼 나도 생각 한 번 해보자고. 그런데 생각하면 뭐가 생기는 거지?’
독서를 한 후 생각이 필요한 이유는 김치로 따지자면 숙성이 필요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책을 통해 배우고 익힌 정보와 지식이 앞서 말했던 궁리를 거칠 때 나의 경험치와 배움이 더해져 숙성이 된다. 그러면 김치가 발효가 되어 김치가 제맛을 내듯 정보와 지식이 경험치가 더해져 지혜가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 박경철은 <자기혁명>라는 책에서 "배우는 것이 벽돌이라면 생각하는 것은 쌓는 것이다. 벽돌을 아무리 많이 찍어내도 쌓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교양을 대표하는 시인 도연명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독(多讀)하고, 다작(多作)하고, 다상량(多商量)하라”라고 말했다.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연명의 이 말의 순서를 바꿔보면 위와 같은 지혜의 탄생과정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읽는 것이 인풋(In-put)이고, 쓰는 것이 아웃풋(Out-put)이라면, 생각하기는 아웃풋을 위한 과정(Process)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글을 읽는다고 해도 생각하지 않으면, 원숭이처럼 남이 말을 그대로 베끼기만 될 뿐 나만의 훌륭한 생각(지혜)은 결코 만들 수 없다. 독서 리뷰는 독서의 결과물이다. 그 점에서 책을 읽고 리뷰하지 않으면 술자리의 한 모금 담배연기처럼 곧 흩어져버리고 만다. 책을 읽어 생각한 내용들을 잃어버릴 것인가, 가둬둘 것인가는 독서 리뷰를 쓰는가 여부에 달려있다.
독서 리뷰는 요점 정리력을 키운다
어느 부유한 아랍의 왕이 똑똑한 신하 1만 명을 모두 불러 "1년 안에 이 세상 최고의 진리를 알아오너라." 명했더니, 1년 되기 전날 100권의 책을 가져왔다. 그래서 ‘100권은 너무 많지 않으냐!’ 인상을 썼더니, 1개월 만에 10권으로 줄여왔다. ‘그래도 많다!’ 화를 냈더니, 다시 1주일 만에 1권으로 줄여왔다.
왕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계속 줄여오는 신하들이 괘씸했다. ‘처음부터 1권으로 가져올 수도 있었는데 나 가지고 논거야?’ 하는 마음에 아예 "1시간 만에 한 문장으로 줄이라"라고 명했다. 그놈의 왕, 게으른 데다 얄궂기까지 하다.
그 후 이 세상 최고의 진리라 불리는 한 문장이 태어났으니, 여러분도 익히 아는 불멸의 금언, “세상에 공짜는 없다.” 되시겠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 하나는 “압축도 잘하면 성공한다!”일 것이다.
리뷰를 쓰면서 드는 생각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우선 ‘내가 왜 이 책을 집어 들었는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생각, 내가 이 책을 통해 찾아낼 해답에 대한 질문인 셈이다. 두 번째는 ‘이 책을 쓴 사람이 누구더라?’ 일 것이다. 국적과 나이, 학력 등 글쓴이의 면면을 살피면 책 내용을 이해하기가 한결 쉽다. 특히 생김새를 안다면 글이 말처럼 들려서 더 잘 읽힌다.
다음은 ‘저자가 뭐라고 했던가?’ 일 것이다. 나는 독후감이나 서평이라 하지 않고, 독서 리뷰라 했다. 말 그대로 ‘읽은 책 다시 들쳐보기’다. 그러니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내가 알고, 배우고, 느낀 바를 적으면 된다. 나름의 코멘트를 더하면 더욱 좋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나 문단 두어 개와 이 책의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주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있으니 다른 곳에서 헤매지 말고, 먼저 이곳을 찾기를)을 옮겨 적으면 ‘친철한 리뷰’ 소릴 들을 것이다. 마지막은 독서 리뷰의 하이라이트인 ‘난 이 책으로 뭘 느꼈더라?’이다.
이런 식으로 독서 리뷰를 쓰고 나면 누구한테 내놔도 욕먹지 않고, 1분 안에 책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버리자. 책 읽고 리뷰하기를 10번 정도 하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도 곁눈질하고 출판사 서평도 벤치마킹하면서 30편 정도 써 보면 실력이 부쩍 늘어 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중에 '까칠한 비토씨'의 블로그가 있다. 장르소설만 천여 편을 읽고 쓴 독서 리뷰를 담은 블로그다. 거의 매일 하루 한 편의 소설 리뷰를 했는데, 그 결과는 2016년 <스파링>이라는 소설로 문학동네 소설상 대상을 받았고, 이듬해 <저스티스 맨>이라는 소설로 세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독서 리뷰는 확실히, 힘이 세다.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진다
“외국어를 알면 한 인생을 더 사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께서 해주신 말이다. 외국어를 알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습을 알게 되니 인생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제2 외국어도 잘한다면? 세 배가 될 것이다.
외국어는 단순히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점수를 높이는 과목이 아니다. 그냥 우리말을 하듯 매일 생활 속에 녹여내듯 외국어를 체득해야 한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차라리 아예 못한다고 말할 정도면 무시하고 살아서 편할 텐데, 어중간한 실력 때문에 늘 마음을 다친다. 특히 요즘 사무치도록 속이 상한데, 이유인즉 TED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의 강의를 담은 이 영상들을 누군가 자막을 넣어주지 않으면 내 힘으로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이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나보다 인생을 두세 배나 더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점에서 독서는 외국어와 닮았다. 책은 저마다 하나의 세상을 가지고 있다. 책에는 저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간접체험’이라고 말하는데, 책을 읽으면 한 세상을 더 만나는 것 같고, 한 사람의 인생을 더 사는 것과 같다. 책을 읽은 후 오늘의 나는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이미 다르다. 생각은 사람을 키우고, 조금 더 큰 사람은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본다. 그리고 독서 리뷰는 이것을 완성한다. 독서 리뷰는 단순히 세상을 보게(see)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보게(look)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친구와 놀려고 막 나가려는데, 당신에게 아버지가 뒷산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 오라고 시켰다.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가장 잰걸음으로 약수터를 향해 달리듯 걸어갔다 올 것이다. 내가 가는 길과 같은 방향으로 물통을 든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내가 앞서야 할 ‘경쟁자’다. 한 사람만 물리치면 5분을 빨리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서둘러 20분 만에 물을 떠 왔다.
며칠이 지난 후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자리에 눕고 말았다. “얘야!” 불러서는 이번에도 뒷산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 오라고 시켰다.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아버지가 이러신다. “뒷산이 보고 싶은데 내가 갈 수가 없으니, 네가 물을 뜨러 가면서 잘 살펴보고 내게 이야기해 다오.” 하시며 돈 천 원을 주신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약수터를 오르는 동안 주변 풍경을 내 눈 속에 담았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큰 바위도 보였고, 길 양 옆에는 예쁜 야생화도 있었다. 약수터에서 내려다보이는 우리 집이 그렇게 조그맣다는 것도 오늘 알았다. 지지배배 울어대는 새소리도 싫지 않았다. 나는 되도록 모두 기억하려 애썼다. 집에 가서 아버지께 잘 설명하면 돈 천 원을 더 줄지도 모를 테니까.
독서 리뷰를 하면 약수터를 바라본 것처럼 세상을 보는 눈이 두 배 정도 더 뚜렷하고 밝아진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기억된다. 무엇보다 썼으니 남을 것이다. 앎이 주는 시야는 새로운 놀라움이자 기쁨이다.
사족 - ‘호의적인 리뷰’를 당부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란 것이 무척 흥미롭지만 대신 때로는 무척 고독하다. 그래서 나는 그 고독감을 떨치고자 ‘책을 이야기한 책’, ‘글쓰기를 이야기한 책’을 구입해 저자를 벗 삼아 차를 마시며 읽곤 한다.
센다 타쿠야가 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서점에 있다>(에이미팩토리)를 읽고 오랫동안 찾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구구절절 내려놓고 있었다. ‘옳지’ 했다가, ‘옳거니’ 했다가, ‘그렇지, 그래’ 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완독을 하고, 또다시 읽고는 아예 센다 타쿠야가 쓴 책을 모두 구입해 그중 <어른의 공부법>을 또 읽었다.
그가 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서점에 있다>에 쓴 글 중에 내가 ‘호의적인 리뷰 쓰기’를 하는 이유를 잘 짚어낸 대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성공한 사람은 여간해서 비판도 잘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즉 ‘좋은 점’을 찾는 데 바쁘다. ‘흠 잡기’나 ‘나쁜 점 찾기’는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좋은 점 찾기’는 뇌를 풀가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좋은 점을 찾아서 자기 삶에 적용하기’는 더욱더 큰 공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성공하는 사람이 모든 것에서 ‘좋은 점 찾기’에 집중하듯이,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의 독서 역시 ‘좋은 것을 남보다 더 먼저 찾고자 하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
책의 좋은 점을 찾는 것이 비판하기보다 어렵다는 센다 타쿠야의 말에 백번 공감한다. 내가 좋은 책을 먼저 만나 그 책을 쉽게 풀어줘서 가급적 많은 사람이 그 책의 진면목을 알고 따라 읽도록 하겠다는 것이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당신도 ‘호의적인 리뷰’를 쓰시라. 읽어서 별로였거든 중간에 덮어버리거나 아예 내다 버린 후 아예 읽지 않은 척하시길. 굳이 안 좋았던 기억을 더듬느라 마음에 두 번 상처를 내지 마시길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더 좋은 책을 한 권 더 만나 시라.
'궁리'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 사진은 소설가 김탁환의 에세이 <천년 습작>이라는 작품의 표지에 담긴 본인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