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도드라지고 싶어 한다.
잘 배우고, 잘 생기고, 많이 갖고 싶어 한다. 맞는 말이다. 이들 문장을 좀 더 들여다 보면 숨은 글자가 있는데, 바로 '더' 이다. 비교의 개념인 '더'는 '남보다'라는 숨은 말을 갖고 다닌다. 그래서 남보다 더 잘 생기고, 남보다 더 배우고,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 한다. 이런 감정을 두고 뭐라고 할 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 오히려 '발전의 동력'이 되는 건강한 감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척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남보다 더 잘 생기지도, 더 많이 배우지도, 더 많이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런 척 하는 자들을 딱, 질색한다. 이런 자들을 일러 '교만하다'고 여기며 거리를 둔다. 여기서 아예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할 자들이 있으니, '오만한 자'들이다.
교만과 오만은 닮은 듯 확연히 다르다. '저 잘났다'고 여기는 데에는 교만과 오만이 서로 닮았는데, 오만은 '남을 업수이 여기는 점'에서 더 못났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남을 업수이 여기는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최악이 된다. 저 잘난 맛에 그치지 않고 남을 비아냥대고, 조롱해서 상대를 깔아뭉개려는 사람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톨스토이 할아버지는 '자기 사랑은 오만의 출발점이고, 오만은 자기만 사랑하는 행동의 정점'이라고 지적했다. 옳고도 옳은 말이다. 저 잘난 모양새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고 그게 지나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자기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오만은 시작한다. 그러는 순간 이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 점에서 오만의 반대말은 겸손이라 할 만하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갖고, 더 나아서 오히려 더 고개를 숙이면 사람들은 칭찬을 넘거 존경을 하게 된다.
선을 쫓기는 정말이지 힘들지만 악을 멀리하기는 차라리 더 낫다.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인간에 대한 주옥같은 명대사가 많은데 그 중 으뜸은 "우리, 사람은 못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이었다. 괴물을 멀리하는 것도 사람이 되는, 좋은 방법이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