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비해, 즉 우리 아버지 세대에 비해 많이 현실화 되었다.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고자하는 노력들이 늘어났다. '저녁이 있는 삶'이나 '워라밸(워크과 라이프의 밸런스)' 등의 용어들이 정착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부족한 부분, 아니 아예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교육이다. 이른바 '선행학습' 이라는 명목하에 가장 시간이 많고 자유로워야 할 우리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에 내몰리며 앉아 있다. 또한 자녀의 성장을 지켜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부모들은 아이의 사교육비를 대느라 야근이나 투잡, 쓰리잡을 하며 오히려 아이들을 덜 보는 경향성까지 띠게 되었다.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
자주 언급했지만 '학원의 최고 수혜주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라고 강남 학원장들은 말한다. 나름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학교 공부에서 부족한 내용이나 더 심화된 내용들을 학원에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학교생활에서 충실하지 못한 학생은 학원이나 과외를 해도 매 한가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마음이 어디 그런가. 학교에서 못한 공부, 학원에서라도 메워 보려고 생떼 같은 돈을 들이고 있으니 아이도 못할 짓이고, 부모도 못할 짓이다.
삶이든 교육이든 '현재에 충실'할 일이다. 충분히 수면을 취한 학생은 맑은 정신으로 학교에 가서 졸지 않고 수업을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바로 숙제를 한 학생은 다음 날 학교를 갈 때 부담없이 등교를 할 수 있다. 혹여 학교에서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부모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편한 마음으로 등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자고, 잘 먹고, 숙제와 과제 잘 하고, 마음에 큰 부담이 없으면 학교 수업을 잘 들을 것이고 더불어 학교성적도 좋아진다. 굳이 학원에 가거나 하지 않고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지만 이게 틀림없는 정답이다.
'선행학습'은 한마디로 돈 까먹는 귀신 같다. 말 그대로 선행학습이어서 적절한 피드백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초등 내 아이가 벌써 중2 수학을 하고 있다'는 과정만 들을 뿐이다. 도대체 얼마나 잘 배우고 있고, 얼마나 익혔는지 모르는데 고등수학을 한들 무슨 소용일까.
문제는 앞집 뒤집 옆집 학부모가 죄다 학원을 보내고 있으니 혹여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방치하는 학부모'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학교에서 우수생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다 보니 '학원에 가야 한다'는 기본값에 '우수생이 다니는 학원'을 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앞뒤 안 가리고 내아이를 그곳에 밀어넣기에 바쁘다. 학원에서 실시하는 '레벨테스트'는 학생의 수준별 강의를 위한 절차라고 하지만, 학원의 희소성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이란 걸 학생도 학부모도 다 안다. 이랬든 저랬든 제 아무리 열심히 선행을 했다 하더라도 제 학년에 가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 아니던가 말이다.
제 아무리 뜨거운 연애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혼 상대는 식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던가. 아이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지금 무엇을 배우던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얼마나 앞서가던지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결국 수능 시험장에 들어가서 당일 시험을 잘 보면 그만인 것이 우리나라 수험 시스템이 아니던가.
내 아이의 공부일랑 조급할 필요 하나 없다. 어제까지 놀았으면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고, 좀 더 놀고 싶으면 나중에 해도 된다. 남들 흉내낼 것이 아니라 내 아이의 현실에 맞춰 '현재의 공부'를 제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글을 잘 못읽으면 국어 교과서를 여러번 읽으면 되고, 너무 느리게 읽으면 손가락으로 줄을 긋듯 움직이며 그것을 따라 읽으면 속도가 빨라진다. 국어는 꾸준히 읽고 쓴다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초등 수학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그래서 가장 중요하다. 초3인데 수학을 어려워 한다면 초등 1학년 1학기 수학교과서부터 새로 풀어보면 된다. 수학교과서로 배우고 수학익힘으로 풀어보면 그 단계는 넘어가는 것이다. 이게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방법이다.
초등생에게 선행학습은 오히려 교육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 펜을 올바르게 쥐고 글씨를 바르게 쓰게 해야 한다. 수학을 제 아무리 잘 해도 숫자 0과 6을 구분해서 쓸 줄 모르면 틀린 답을 내게 된다. 초등 3학년인데 어른처럼 유려하게 글씨를 쓴다면 선행학습이 잘 된 것이다.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더도 덜도 말고 하루 30분 정도 소리내어 읽을 수 있으면 이 역시 훌륭한 선행학습이다. 쉼표에서 쉴 줄 알고, 마침표에서 한 박자 마치고, 첫줄 마지막 둘째 줄 처음에 한 단어가 있다면 이를 연결해서 읽을 줄 알면 훌륭한 선행학습이 된 것이다.
표현할 줄 알면 훌륭한 선행학습을 한 것이다. 제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일기에서도 독서록에서도 자신의 느낌과 생각 혹은 상상을 표현하도록 많은 대화를 통해 이끌어야 한다. 그럴려면 부모가 먼저 선을 보여야 한다. 친구, 자네가 할 줄 모르면서 아이에게 잘 하길 바란다면...이건 아니지 않나?
오늘의 내 아이는 내일 또 다른 아이가 된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말처럼, 오늘의 내 아이는 내일 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보기를 바란다. 이것이 부모로서 학부모로서 현재에 집중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