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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

by 리치보이 richboy


아이들의 시선이 주는 특별함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그녀의 놀라운 책 <이토록 지적인 산책>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산책을 떠난다. 지질학자는 도시의 건물에서 무엇을 발견할까? 음향 엔지니어는 콘크리트 위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까? 도시사회학자는 보행자의 걸음걸이에서 무엇을 볼까?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산책은 알렉산드라가 그녀의 19개월 된 아들과 떠나는 산책이었다.


계획은 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집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갔다. 그러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후 로비를 가로질러 산책로가 시작되는 아파트 정문으로 향했다. 알렉산드라는 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들의 산책은 산책로가 아니라 집에서 걸어나오는 순간부터 시자고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세상은 우리가 당연하게 살아가며 걷는 곳과는 매우 다른 곳이다. 이는 아이들의 몸집이 작고 경험이 부족한 것과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생각과 인상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알렉산드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 새로운 것을 볼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상기시켜준다.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를 해독해 주는 역할을 한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가 세상을 더 좋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특별하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산책을 꼭 밖에서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저녁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는 것, 포장 상자가 그 안에 들어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아이들의 이런 정신을 격려해야 한다. 미묘한 수정과 '공식적인' 방식을 고집하며 그러한 정신을 짓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이들의 시선을 배우고 그 시선을 최대한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데일리 대드, 라이언 홀리데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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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이가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부모없이'라는 점이다. 이건 부모없이 수학여행을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저희들이 원하는 '열차모형'을 사러 부산역 까지 한시간 거리를 혼자 떠난 것이다. 기말고사도 치렀겠다, 날도 좋은 일요일 이었던 만큼 '허락'을 했지만, 아이는 기뻐하며 기대하는 반면, 부모인 나는 허락해 준 것을 두고 계속 후회했다. 이유는 단 하나, 불안해서였다.


아이는 그런 부모를 위해 부산역을 들러 열차모형을 사고 친구집에서 놀다가 오후에 오는 여정에서 타야 하는 버스 번호와 시간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불안했다. 아이가 친구와 만나 부산역을 향하는 동안 나는 아내와 해운대 해수욕장을 걷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동백섬 누리마루를 산책했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부모를 떠나 놀러간 날 부모는 아이가 처음으로 아장아장 걷던 그곳을 찾은 것이다.


아이는 잘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 없이 친구와 단 둘이 떠난 잠깐의 여정이 어찌나 재밌고 즐거웠던지 벌써 다음 여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마음 한쪽 구석을 졸이고 있던 내가 서운할 만큼이나 말이다. 뭐든 처음엔 그런 법, 아니던가. 나도 그랬던 것처럼. 뻔히 알면서도 또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없어서 불안하고 나를 떨궈내서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초등 6학년의 절반을 넘은 아이는 점점 친구가 좋아지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내년 그리고 또 내년이 되면 친구의 비중은 80 퍼센트가 될 만큼 많아지고, 나머지가 부모의 몫이 될 만큼 줄어들 것이다. 이 말은 곧 점점 부모의 손길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고, 제가 원하는 바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다행이고 잘 됐다 싶으면서도 서운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방파제 때문에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부터 안장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제는 자전거가 없이도 바다를 볼 수 없을 만큼 훌쩍 커버렸다. 자라는 키만큼 세상을 멀리 보일테고, 머지 않아 나보다 더 큰 키로 세상을 멀리 멀리 볼 테지. 그 때가 되면 훌쩍 큰 키로 내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고난 뒤 내게 '세상이 이렇게 저렇게 보인다'고 설명할 테지. 이런 게 시간의 흐름이 만드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그 때가 되면 아이가 세상을 잘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본 세상보다 훨씬 더 잘 봤으면 좋겠다. -rich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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