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이다. 생각만 가득하고 종이나 모니터 위에 글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으니 '글을 쓰지 않은 것'이다. 해서 뭐라도 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뭐라도 쓰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된다.
그럼 왜 그럴까?
바로 '자기 검열' 때문이다. 뭔가를 쓰려면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유치해서 못 봐주겠네. 그게 글이냐? 정말 이걸 쓰려고?"라는 식으로 퉁을 놓기 시작한다. 당신 속 또 다른 당신은 이건 이래서 별로고, 저건 저래서 그지 같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게 '자기 검열'이다.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하면 한 줄을 쓰는 것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 시간이 지나도 하고픈 말을 채 반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무조건 쓰라"라고 말한다.
마치 내 머릿속 생각을 모두 토해내듯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쓰는 것이다. 오타나 맞춤법도 고려하지 않은 오로지 떠오르는 지금의 생각을 글로 써 보라. 그리고 다 썼다 생각되면 한 번 읽어보라. 그럼 이 단어가 떠오른다. "개. 판. 오. 분. 전."
부끄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다듬기 전의 글이니 지울 필요 없다. 글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상상 속에만 있던 것을 종이 위나 모니터에 띄운 순간 무에서 유가 만들어졌다. 이제부터 다듬으면 된다. 중언부언한 건 과감히 지우고 말이 되는 소리가 되도록 줄이고 늘려라. 주의할 건 늘이기보다 줄여야 한다.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라. 말이 되는 마지막까지 줄이다 보면, 그래서 더 이상 줄일 말이 없으면 그때가 '내가 하고픈 말'이 된다.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습관적으로 활동하는 것들이 43% 라고 한다.
먹고 싸고 씻고 운전하고 마시고 하는 것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한, 그래서 내일도 할 것들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굳이 글로 쓸 일이 아니다(이 말은 곧 SNS에 떠 도는 커피와 음식들, 장소들을 보라. 그들은 매일 그것들을 즐겨서 올리는 게 아니라, 백만 년 만에 한 번 경험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하는 짓이니 그리 부러워할 것도 없다는 뜻이 된다).
잠자는 시간 33%를 뚝 떼어놓고, 습관적으로 허비하는 시간 43% 떼어놓으면 오늘 내가 딱히 보내는 시간 24%가 남는다. 그게 뭘까? 그 시간에 난 무엇을 생각할까? 고민해 보라. 그리고 그걸 써 보라. 그럼 줄이고 지울 게 그리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