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는 친구들이, 꼭 읽어야 할 글

by 리치보이 richboy
KakaoTalk_20250724_200918536.jpg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오늘글은 이 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 있는 백여 편의 글 중에 백미에 속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펼칠 때 마다 이 글을 읽는데, 읽을 때 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늘은 이 글을 읽으면서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온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신경정신과 교수이자 작가인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열차 속에는 유대인들로 꽉 차 있었다. 안된 표현이지만 마치 김밥 속 밥알들 처럼 좌석도 없는 화물칸에 켜켜이 사람들로 꽉 차서 서 있는 채로 목적지로 향했다. 먹는 것은 고사하고 물도 먹지 못했다. 잠도 서서 잤다. 잠이 들어 다리가 풀려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로 몸이 꽉 차 있어서 주저앉을 수도 없어서 였다. 용변도 서서 봤다. 상상해 보라. 악취와 다름없는 그 많은 사람들의 채취와 신음과 절규를...열차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유대인 절반은 내렸지만, 절반은 그렇지 못했다. 서 있는 채로 숨진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잠들지 못해서, 아파서, 먹지 못해서, 병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면서 충격을 받았고, 좌절하고, 슬퍼서 망연자실했던 그들은 어쩌면 서 있는 채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른다.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같은 시련을 함께 겪고도 기어이 살아남았다. 아니, 어쩌면 기필코 살아남으려 했기에 살아남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지금 죽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를 오가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빅터는 나중에는 온 가족이 사망한 소식을 듣고 절망한다. 그리고 그의 이력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책의 원고도 빼앗겨 불태워지는 걸 보고 살아야 할 희망을 찾지 못했다. 바로 이 순간이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담장이 된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살아야 할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겪음 모든 것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생각은 그에게 삶의 의미가 되었고, 이러한 의미는 '생의 의지'로 변했다. 그는 결국 살아남았고, 그의 역작들은 그렇게 태어났다.


톨스토이 할아버지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늘 기쁨 속에서 살면서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을 준비하라'고 조언해 준다. 우리의 삶이 빛나는 건 '언젠가는 끝난다'는 유한함 때문이다. 톨스토이 할아버지는 죽는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방랑자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을 준비하는 건 바로 이런 마음인 것이다.


또한 톨스토이 할아버지가 이 책에서 수십 번이나 이야기 하는 '영적인 삶'은 종교, 뭐 이딴 삶이 아니라 '동물적인 삶과 반대되는 삶'을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적인 삶의 반대는 뭘까? 생각해 보건데 입고 싸고 먹고 마시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며 사는 삶이 아닐까. 일종의 '소명' 뭐 그런거 말이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최근에 벌어졌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게다가 법을 다스리는 검찰의 수장이기도 했던 인간이, 사형집행도 아니고 조사를 하겠다는데 속옷바람으로 저항했다는 소식은... 살다 살다 이런 해괴한 뉴스는 듣던 중 처음이다. 무슨 <썬데이 서울> 같은 황색저널의 해외토픽에서나 읽을 법한 것이었다. 육십 넘게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해버리는 저런 삶은, 결코 모델이 될 수 없는 삶이 아닐까.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사람답게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염치' 즉 '부끄러운 줄 알며 사는 것'이다. 누가 볼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제 않게 살면 최소한의 동물처럼 살지 않는 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이지 '개 같이 사는 인간'들이 수도 없이 뉴스에 언급되는 것 같다.


다시 돌아가서, 친구들이 오늘 일요일을 마무리 하면서 '생을 마감하면서 스스로를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방랑자로 느낄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도 잠시 해 봤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richboy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물권법- 소유권, 제한물권, 용익물권(기출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