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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현 Oct 21. 2022

35살, 소개팅앱과 결혼정보회사로 결혼이 가능할까?

매사에 벼락치기인 '게으른 완벽주의자'ENFP의 결혼 성공 스토리


  

2022년 올해 연애,결혼 상담만 10명은 넘게 한 것 같다.      



“언니, 소개팅앱 골드스푼 어때요? 괜찮아요?”

“물어볼 게 있는데 결혼정보회사 가입하는 거 진짜 괜찮아?”

“진짜 니가 똑똑했다.. 나도 진작 가입할걸, 알아볼걸, 그만놀걸 그랬다.”

“언니, 다른 풀은 없을까요? 추천해주실만한 곳 없을까요?”     



올 한 해는 어리게는 25세부터 많게는 38세의 자주 만나고 친했던 그녀들의 안부 반, 문의 반의 카톡들이 정말 많은 해였다. 나는 올해 1월에 결혼을 하고 3월에 아이를 가지고 11월에 출산 예정인 꽉찬 35세이다.    

  

어떤 스토리가 있었길래 연애,결혼에 고민인 여자들의 연락이 쇄도하는 것일까.      


 결혼에 대한 조급함을 느낀 게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딱 29살이 되던 해였다. 28살 늦은 나이에 대학원 졸업을 하고 제약회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이제야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었으니 아직 결혼은 먼 얘기같기만 했는데, 29살의 새해가 되던 해 갑자기 ‘결혼’이라는 단어가 훅 들어왔던 것 같다. 아홉수네, 내년이면 계란 한판이네 하는 얘기를 들으며, 그리고 결혼 소식을 들려주는 친구들이 한둘씩 생기면서 아차했던 것 같다. ‘이제 사회 생활 1년차인데 벌써 결혼 생각을 해야되네..?’ 하면서 내 인생은 좀 아슬아슬하게 항상 벼락치기인 것 같단 생각이 스쳤었다. ‘앞자리가 바뀌는 30세에는 결혼해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지인 소개팅을 통해 나와 똑같은 제약회사 연구원인 남자친구를 만나보기도 했고, 다니는 교회에서 청년부 모임 통해 썸을 타다 교제하기도 했지만 잠깐일뿐이었다. 그리고 29살의 연말, 노블 결혼정보회사(고위직, 전문직 위주의 남성을 소개받는 특정 결정사를 일컫는 말, 일반 결정사와 차별화를 두기 위한 단어 '노블레스'에서 온듯하다 : 노블 결정사)에서 주최하는 크리스마스파티에 가보게 되었고, 그렇게 결혼시장에서 나의 위치가 어떤지 꿀맛을 맛보게 되었다. 비즈가 한껏 수놓아진 베이지톤의 화려한 머메이드 드레스를 빌려 입고, 샵에서 헤메(헤어메이크업)를 받고 간 그 곳은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새로운 사람들, 상류층 남자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결과는 크리스마스파티이다보니 여러 재밌는 프로그램들을 거쳐 최종적으로 꽃을 3명한테나 받게 되었다. 인기상으로 압구정현대백화점에 입점되어 있는 피부과 시술권도 얻게 되었으며, 그 3명의 남성을 아무런 비용 없이 소개도 받게 되었다. 결정사 입장에서는 그 3분이 내 연락처를 요청하는 바람에, 결정사 등록도 안한 나를 3명과 연결시켜 주었으니 속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세 명중 1명은 내과의사, 1명은 정신과의사, 1명은 사업가였다. 늘 나와 비슷한 환경의 비슷한 사람을 비슷한 지인에게 소개를 받거나, 내가 속해있는 그룹에서 자연스럽게 연애를 해온 나에게 이 경험들은 신세계같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전문직 남성들,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남성들을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수치적으로, 좀 더 표면적으로 와닿지 않았었기에, 특히 내 나이 29살이 주는 선물같은 기회인지 몰랐던 것 같다. 소개받은 3명의 남성분들과는 교제로 연결되진 않았다. 외모에 끌림이 없었거나, 나이차이가 띠동갑 이상이거나, 파티 문화, 부자들과의 문화에 익숙한 분이라 평범히 살아온 나와는 이질감이 너무 컸거나 하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한두번 만남 끝에 완곡하게 거절을 하게 되었고, 연말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끝난 채, 결혼시장에서의 내 위치를 확인했다는 의미만 두고 30세를 맞이하였다.


  그렇게 맛보게 된 노블 결정사였지만, 고액의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사람을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똑같은 노블 지향의 결정사이지만 합리적인 비용인 다른 업체로 등록하게 되었다. 전문직, 상류층 위주의 남성분들을 소개받았고, 30, 31세 2년동안 내 눈은 하늘 높이 올라갔지만, 마음맞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더 민낯을 드러내 가감없이 얘기하자면, 마음이 안맞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씨게 데였다고 해야 맞겠다. 자신이 집안에서 첫 의사이고, 아들이 의사인 게 가장 큰 자랑인 집안에서 의사가 되었을 경우, 여자 집안에 1억 이상의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의사 사위 얻으려면 차키, 아파트 키는 기본으로 있어야 된다는 말은 다 옛말인 줄 알았는데, 의사도 어떤 집안 환경의 의사냐에 따라 다르다는 걸 몸소 느꼈다.


 나의 문제점도 있었다. 매일 같이 잘 일어났는지, 출근은 잘 했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먹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퇴근은 잘했는지, 쉴틈없이 연락을 해야 사랑인 줄 아는 '어린 연애'를 했던지라, 늘 바빠 연락이 잘 안되는 의사 남친은 나에게 외로움을 아주 진하게 주었다. 심지어 안정 애착을 주지 못하는, 불안정 애착, 회피형 애착인 의사 남친과 교제하니 나의 외로움은 배로 가중되었다. 다시 말해 나의 정서 상태는 너덜너덜하고 피폐해졌었다. 결혼이 그저 나이로 인한 압박 때문에 급했다기 보단 집에서 ‘탈출’하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도피처’삼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도 했던터라, 이런 정서상태의 나를 보듬어주기보다는 매우 이성적이고 자신의 일에 골몰하는 정형외과 의사 남친은 날 한도끝도 없이 외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32살이 되었고, 결혼이고 뭐고 집에서 도망치듯나와 회사 근처로 첫 독립을 하게 되었다. 혼자 있는 원룸에서 아주 깊은 외로움을 느끼며 매일 울면서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깊은 고독감 속에 내 이상형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여전히 경제적 안정감과 남이 주는 부러움의 시선(전문직 남편에 대한)에 대한 니즈가 남아있었지만, 당장 내 마음을 보듬어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보다도 연봉도 낮고, 나이도 어리고 키도 나와 똑같지만 착해보이는 회사원 남친을 만났다. 그리고 전문직이 아니어도, 나만 바라보는 따뜻한 남자, 지금 당장 변변한 밑천은 없어도 착한 남자면 되지 않겠느냐며 내 마음을 속이고 합리화하며 교제를 해나갔다.      


28,29세 결혼적령기 1분기

 – 사회생활 시작, 학생 때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연애 후 이별     


30,31세 결혼적령기 2분기

 –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전문직 소개팅 및 전문직 남친과 교제 후 이별      


32,33세 결혼적령기 3분기

 –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친과 2년간 경제적, 정신적으로 시달리며 교제 후 이별     


34,35세 결혼적령기 4분기

 – 내 인생에 대한 포폴(포트폴리오)을 정리 + 나름의 퍼스널브랜딩 통해

    150명과 소개팅 후 내 반쪽 찾고, 35세에 결혼에 골인      

    


내 나름 정리한 결혼적령기의 1~4분기이다. 뼈저리게 많은 배움을 한 1,2,3분기를 거쳐 마지막 분기는 결국에는 성공적으로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30,31세에는 2,3명은 만나보며 2년을 보냈지만, 정말 내 인생에 마지막일 것 같았던, 내 인생에 너무나 귀하고 찬란하게만 보이는 결혼 최적 적령기였던 32,33세를 매일같이 싸우며 2년이란 시간을 바쳐 교제를 했던 게 나에게 너무나 큰 리스크였었다. 이별을 결심하기도 어려웠던 나이와 교제 기간이었지만, 그 친구의 참을 수 없는 술주사와 폭력적인 행동들(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지만)로 인해 완전히 관계는 끝나버렸다. 그렇게 34세를 맞이했을 때 내 인생이 다 끝난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가, 아니다, 다시 잘해보자! 했다가를 반복했었다. 그리고 워낙에 뭐든 데드라인이 있어야 실행력이 최고조에 이르는 벼락치기 스타일이다보니, 34살 되던 해 1월이 되자마자 30살에는 망설였던 노블 결혼정보회사를 거금을 들여 등록했다. 4년 전 급할 것도 없고, 파릇했던 30살 때 결정사 크리스마스 파티에 갔던 때와는 다르게 칼을 가는 마음이 있었다. 끝이 좋지 않았던 이별로 인한 깊은 상처가 있었고,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고, 여기서 주저앉아서는 안된다는 결의에 차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 속의 마지노선은 35살이었으므로, 나에게 34살이란 나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1월부터 7월까지 반년의 기간동안, 노블 결정사, 베스트클래스, 골드스푼 등 이렇게 3군데를 통해 대코로나 시기였던 2021년, 하루에 두탕도 뛰어가며 소개팅을 정말 열심히 했다.      


다른 것보다 이별의 아픔을 추스르고서 맞이한 34세 새해이다 보니, 내 인생을 되짚어보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날 소개할 수 있는지를 정리해나갔다. 실제로 결정사도 소개팅앱에서도 인증절차 중에 소개서를 작성해서 내야 했다. 표면적으로 좋아보일 수 있는 이점들 위주로 적자면 이공계 대학 졸업, 대학원 석사 졸업, 제약회사 연구원 6년차, 트레이너자격증 소지, 부동산 소유, 자차 소유, 중산층 가정, 잠실 출생, 서초 거주 등을 적어냈고, 바디프로필 사진, 일반프로필 사진, 연구원프로필 사진을 통해 괜찮은 스펙에 외모도 이 정도면 잘 가꿨고 몸매도 좋은 편임을 어필하게 되니, 세군데에서 모두 건강미 넘치고 밝은 성격을 가진 미모의 제약회사 연구원 이라는 브랜딩 타이틀을 달아주었다. 스스로 20대후반, 30대 초반에 결혼할 사람도 못만나고 뭐한건가 싶기도 하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대기업에 다녀본 경험도 없는데 너무 잘난 남자들 앞에 기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내가 가진 것들에 집중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떠어떠한 사람' 이라는 브랜딩 타이틀 문장을 만들어놓으니 결정사에 등록한 다른 여자분들과 차별성이 컸었다.     


 자기소개는 내 지난날을 되짚어보며 내 연약한 점들이 무엇인지,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3가지가 무엇인지 담담하게 적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태초부터(!) 밝은 성격의 ENFP임을 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론은 세군데 모두에서 소개팅이 차고 넘치게 들어왔다. 2021년은 9시면 음식점이 닫는 코로나 시기였던터라, 9시 이후에는 한강에서 3일 전에 만났던 분과 2번째 만남을 하기도 했다. 평일에는 이렇게 하루 최대 두탕, 주말에는 점심, 저녁 두탕 내지 3시 약속으로 세탕까지도 가능했다. 그렇게 한 주에 최대 9명까지도 만난 적이 있었다. 노트에 적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기억할 게 많았지만, 차주가 되면 한두명 빼고는 정리가 되었고, 만남횟수가 2~3회차 정도 되었다. 이 정도 스케줄을 7~8개월동안 유지했다. 수능날이 코앞인 고3 수험생의 마음으로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고, 개인 약속을 잡는 일도 없었다. 마치 학업에만 몰두하는 학생처럼, 내 인생의 반쪽을 꼭 올해 안에 만나겠단 결의에 찬 의지로 말이다.      


이렇게 많은 소개팅을 했을 때에 장점은 많은 남자들과 얘길 나누다보니 타입별로 분류가 되고, 내가 어떤 점을 정말 못참고 싫어하는지가 명확해지고, 어떤 점은 무조건 있어야 하는 부분인지가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이 되었다. 단순히 ‘준수한 외모, 착한 성격이 이상형, 흡연자는 No’ 와 같은 단순한 생각으로는 절대로 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날 수 없음을 깨달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소개팅을 많이 하는 것의 단점은 한 두사람만 소개받을 때에는 집중도가 컸는데, 매주 새로운 남자들을 소개받을 수 있으니 사람 귀한 줄 모르게 되어, 아쉬울 게 없는 태도가 된다는 점이다.- 건방진 태도, 콧대높고 도도한 태도라기보단 그냥 아쉬울 게 없어보이는 분위기 정도.. - 어찌보면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게 상대방에게 여운을 준다는 점에서 장점일 수도 있으나, 쉬이 인연을 놓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될 수도 있기에 단점이라면 단점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건대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크다.      


한 사람만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깨닫게 되는 것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내가 만나야 할 사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경험은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다.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많이 본 임원진분들이 ‘얼굴만 봐도 어떤 애인지 안다’라고 했던 말이, 그냥 허풍이 아니었구나, 쉬이 속단하는 소리가 아니었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나도 100명 정도의 분기점이 오니 ‘이 사람이랑은 가치관이 아니다’ 라는 게 1시간 식사 동안 금방 파악이 되었다. 또 '젊었을 때 많이 놀아본 여자가 결혼도 잘한다더라' 하는 말이 없는 말이 아님도 실감하게 되었다. 많이 놀아봤다라는 뜻에는 많은 남자들을 만나보며 어떤 사람과 마음이 잘 맞는지,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을 해봤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과 다양한 문제들을 두고 서로 '조율'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봤을테고, 그렇게 조율하고 조절해본 경험도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젊었을 때 많이 놀아본 여자'가 고르고 골라 만난 남자, 신중히 고민해 진행한 결혼이기에 결혼 잘 했다더라 하는 평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약 7개월의 기간동안 150명의 남성분들을 만났다. 그들의 직업도, 나이도, 외모도, 가치관도 저마다 다르지만 내 나름 타입별로 분류가 가능한 지점이 왔고, 무엇보다 연애가 아닌 '결혼할 사람'에 대한 기준점이 확고하게 마련되었다. 그리고 여름 어느 날, 내가 세운 기준점에 맞는 남자가 드디어 나타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잘 안가서 첫 눈에 알아보질 못했다. 6번 만남 이후에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준 남자, 그리고 지금은 나와 한 집에 살고 있는 남자, 이 남자를 2021년이 반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만나게 되었고, 내 소개팅은 이 남자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완전히 중단하였다. 그리고 2021년 하반기동안 교제한 후, 2022년 1월에 우리는 웨딩마치를 했다.     




너무나 풀고 싶은 썰이 많다. 내 인생의 동반자,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기준점은 어떻게 세우게 되었는지, 어떤 기준점들이 각자에게 마련이 되어야 하는지, 150명의 남자들은 다 어떠했는지, 어떤 게 제일 참아지질 않았는지, 이 경험들로 어떤 점을 제일 배우게 되었는지 등을 풀어내고 싶다. 아직 연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아서 끽해야 주변 친구, 언니들에게 조언을 구한채로 도찐개찐의 답만 도돌이표하고 있는 많은 2030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켜주고 싶다. 내 브런치 글은 ‘자주적인 여성’이 되라던지, ‘남자없이도 살 수 있는 방법’ 이라던지, ‘비혼’이어도 행복하다 라던지 하는 가치관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놓여 있다. 결혼을 원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원하고, 특히 ‘경제적 안정감’이 1순위인 여성들을 위해 내 경험들을 가감없이 풀어내어, 나처럼 자신만의 결혼적령기 1,2,3분기를 놓치지 않기를, 그리고 4분기가 지났어도 농축된 의지와 경험으로 일년 안에 아니 반년 안에 내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될거란 용기와 확신을 꼭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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