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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경험해 본 것들에 대해

(나의 퇴사기 그 열한 번째 이야기.)


퇴사 후 경험해 본 것들에 대한 기억과 느낌에 대해


'제도권 생활'을 17년 간 한 이후 발겨 벗겨져 나온 세상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투성이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복사할 때, 팩스를 보낼 때, 때 되면 점심을 먹을 공간? 도 동료도 없는,


무엇보다 자녀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분들께 나를 소개할 '명함'이 없다는 것이

익숙지 않고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그 명함 한 장이 나를 대변해 주고, 

추가적인 설명 없어도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어찌 보면 조직에서 받았던 여러 수혜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한 명함 없이 내가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처음 퇴사 전에는 퇴사 후 내 사업?을 해 볼 생각도 했었습니다.

퇴직 하기 직전에 취득한 공인중개사 자격과 그동안 직, 간접적으로 경험 부동산 투자와 지식들 등을 통해

현직 중개사무소나 중개법인을 통해 경험을 쌓은 후 내 사업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컸었죠.


그도 그럴 것이 작년 말 그리고 제가 퇴사를 한 올 초 시점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아주 호황이었고

집 값은 고공 상승 중이어서 어지간한 서울의 매매거래 한 건이면 웬만한 대기업 직장인 월급 이상의

수입이 가능했기에. 막연히 잘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마흔 중반의 미 경력자를 선 뜻 받아줄 중개사무소와 중개법인은 없었습니다.

(더 나이 드신 선배님들도 취업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


이쪽 계통은 아무래도 소속 공인중개사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이거나 '젊거나' 

둘 중 하나에 해당이 되어야 유리하다는 것이 소문이 아니었음을 깨닫기에는 몇 달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태껏 해온 월급쟁이 생활을 연명? 해 보고자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어 두고, 

헤드헌팅 업체에도 의뢰를 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올 가을까지 대략 100여 곳은 두드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대기업, 그 이후는 중견기업, 그 이후에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연봉 3,000 전후 업체라면 

통근이 가능한 곳은 모두. 


인터뷰를 본 곳이 2군데 정도로 기억이 납니다. 그나마도 탈락을 했지만요

과거 이직 시절, 이곳저곳에서 인터뷰 제안을 받았던 호 시절은 이제 끝이구나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아이 육아를 하는 것도 몇 달이 지나자 매너리즘이 왔고, 아이를 혼내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나의 감정을 아이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투영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나가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집 안에서 갇힌 생활을 빨리 벗어나야지 안 그러면 어떻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바몬, 잡코리아, 벼룩시장, 등 앱을 통해 이력서를 등록하고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제한적이더군요.

40대 중반의 사무직 경력의 남성, '낀 세대'로 젊은이들이 하는 곳에는 늙은이, 장년 층들이 하는 일에서는

너무 젊어서 안되고, 아르바이트 역시 경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간혹 단기성으로 일이 가능한 곳이 오면, '실업급여 수급기간'이라 이 실업급여 보다 더 높은 PAY를 받는

아르바이트를 찾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에 해당이 되는 자리는 소위 '막일'현장을 

제외하곤(요즘은 그나마다 원천징수 신고 후 계좌 입금하는 곳이 태반이지만) 거의 없더군요.. 


그러다, 보수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부동산 자산관리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비슷한 목적을 지닌 이들과 같은 주제를 두고 영업을 하고 나름 스킬을 배우는 시간이 

집에서 먼 거리의 통근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그때 느낀 바지만, 직장이라는 곳이 돈 이외, 동료들과의 소통이 주는 즐거움도 큰 곳이었구나라를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물론 직장에서 제 마지막 해는 그러진 못했지만요)


이곳에서도 일을 배우면서 실적?을 내게 되면 거래 금액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받는 

일종의 개인 사업의 개념인데, 수완 좋은 분들은 잘하셨지만, 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거래실적 0, 3달간 수입 0. 

오히려 왕복 통근 시간과 그곳에서 상주하면서 쓴 시간, 식대, 교통비 등을 감안하면 

비용적 측면에서는 손실이었죠. 


그렇게 퇴사 후 10개월을 내 손으로 번 돈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주변 보기도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가 무능력자가 된 듯하여,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종료된 후 한 업체로부터 아르바이트 인터뷰 제안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업체 명을 밝히기는 그렇습니다만)

아웃바운드 콜을 해서 광고? 스팸 성격의 동의를 구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하루 15건의 동의를 구하면 한 달에 170만 원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참 뭐랄까 사무공간과 인터뷰를 주관한 면접관의 연령대와 입성을 보면서,,,

(나이에 대한 편견보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일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 그걸 듣고 있는 나를 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양재역부터 사당역까지 추운 바람을 맞으면 '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걸었습니다.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일말의 양심? 그것도 아니면 자존심?


그러다 한 기사를 봤습니다. 


자산 27억, 월 현금흐름 1,000만 원의 37세 환경미화원 사연. 


뭐, 이 글에서 자산에 부채가 얼마 있을 것이다, 현금흐름 중 대출이자를 제하면 얼마나 남겠느냐 등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추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런 규모를 만들었는데, 

그분은 일을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투자금을 만드는 총알 모으기'정도로

여긴다는 그 말이 참 뇌리에 강하게 박히더군요.


나는 저분에 비해 뭐가 나은 거지?


내가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서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자산과 현금흐름을 만들어 놨나 하는 생각에.

깊은 반성이 들었습니다. 


다만 얼마라도 아직은 현금흐름을 더 만들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까지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은 1월 2일입니다.


저는 내일(1월 3일)부터 그동안의 저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곳에서 제가 그토록 혐오? 했던

최저 시급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뭔가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곳에서 나온 현금을 또 다른 투자를 할 총알 장전의 시간이라 생각하며,


당분간은 해 보려 합니다. 

(아직은 이 일이 무엇인지 밝히기는 좀 어렵습니다. 이 건은 나중에...)


퇴사를 통해 겪은 이런저런 경험담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퇴사 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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