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하시죠 차장님.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에 대해 4편
"이제 그만하시죠. 차장님"
"저도 경영지원실장님께 매 번 깨지고 괴롭습니다."
"저한테는 차장님 인력 정리가 엑셀에 카운트되는 숫자 1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무 감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회사는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게 그게 바로 인사원칙이에요.."
"그런데 차장님은 성희롱과 사내 폭행을 저지른 다른 간부분들 보다 필요가 없다는 게
회사가 내린 결론이고요"
퇴사와 관련한 면담을 주기적으로 진행했을 때 소속회사 인사팀장과,
지주회사 인사팀장에게 들었던 말 들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다른 어떤 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나 잊힐까요..
한 번은 물었습니다.
"제가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사규나 취업규칙을 어긴 적이 있습니까?"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정말 이 왜라는 질문은, 인사팀장과 회사가 아닌 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일까?
오래전 봤던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최민수 배우 역)가 15년간 갇혀 있을 때처럼
종이에(저는 PC에) 기록을 해 봤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저를 잘 아는 사람이 제게 답?을 알려주더군요.
당신의 회사 내 운명을 좌지우지할 사람 눈에 들지 못했고, 적어도 눈에 들지 못했더라도
눈 밖에 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당신은 당신의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들 눈 밖에 나서,
같이 데려가지 않으면 부담이 될 대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어찌 보면 저 보다 더 제가 처한 상황의 원인을 잘 아는 듯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바로 제 아내였습니다.
힘든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하는 저를 옆에서 때로는 응원을 때로는 "그냥 때려치우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해주는 제 아내. 직장생활의 힘겨움이 가정에 까지 전파되는 것이 참 싫었는데
지난 몇 년간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서 가장 미안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회사 밖을 나오기까지 아내에게 많은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 역시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인데, 저 보다 쉽지 않은 상황도 분명 많았을 텐데,
저의 이런 징징거림이 아내로 하여금 또 다른 전쟁터에서 버티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아내의 말처럼,
저는 당시 제가 속했던 J일보 팀장이 노골적으로 "같이 있으면 불편하니 인사팀에 저를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모종의 조치를 요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와 맞물려 J일보 경영지원실(장) 차원의 경영직 인력감축이라는 시점에 맞물려서,
정리해고 대상으로 분류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침 당시 신임 경영지원실장 역시, 그분이
J 계열사 인사팀장이었을 당시 제가 경영기획팀 실무였을 때
업무 관련하여 이견이 있었고 대립되는 의견이 종종 있었기에 '눈에 가시'처럼 여겼었기에
모든 상황이 저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인사팀장과 수 차례 면담 끝에,
정리하는 기간 1개월과 위로가 되지 않는 수준의 위로금. 그리고 회사 차원의 권고사직이기에
실업급여 수급자격이라는 조건으로 사직서에 사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직서 사인을 하는데, 인사팀장이 "고맙다"라고 하더군요.
내 사표 받아 내는 것이 그렇게 고마운 일이었을까요, 아니면 이제 하나 일 처리를 끝냈다는 홀가분에 대한
스스로의 기쁨의 표현이었을까요.
사직서 싸인 후 하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다른 직원 동요가 있을 수 있으니, 사직서 기준 퇴사 일자까지 개별 짐을 옮기지 말고, 퇴사 관련하여 나눈
이야기를 일절 공유하지 말라는.
어차피 같이 이런 이야기를 나눌 동료도 없었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한 후,
회사 정문을 나왔습니다.
여느 때 퇴근과는 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그렇게 월요일 아침이면 들어가기 싫었던 문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상암동에서 가양대교를 넘어가는데, 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저 해처럼 나도 직장에서 저물어 가는 이제 저문 해가,, 하긴 언제 제대로 떠 본 적도 없었지만"
아직 신분은 재직 중인데,
눈물이 나더군요.
그냥 서러웠습니다.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낀 채 눈이 빨게 지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 없던 시간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집에 뭐라고 이야기하지..
당장 내일부터 뭘 해야 하나..
그런 고민들이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때가 2021년 2월 중순이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은 진행형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