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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중입니다.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에 대해 5편

재택근무 중입니다.


2월 하순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기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 후 잠깐 착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았습니다.

"나는 자유다." 마치 성공해서 은퇴한 사람과 같은 그런 착각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금세 저를 그런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는 알람을 주었습니다.




3월이 되어 어느덧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돌이 될 때까지 낮밤이 바뀌어서 엄마 아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했던 녀석이

그래서 '인권 침해자'라고 반 농담으로 불렀던 아가가 책가방을 들고 학교를 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견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분을 두신 부모님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요즘 아이들 하교 시간에 특히 신학기라, 통학이 익숙지 않은 아이들에겐, 하교 시간에 맞춰 보호자가

대기를 하여 같이 집이나 다른 목적지로 데리고 가곤 합니다.


그게 제 몫이 되어 버렸죠 자연스럽게. 낮에 집에 있는 사람이 저였으니까요..


사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교문 앞에 기다리는 인파에 아이 엄마, 조부모님들은 간혹 보여도 아이 아빠가 기다리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으니까요.


한 번은 재 아이와 아내를 아는, 그러나 저는 모르는 어떤 아주머니께서 물어보시더군요..


"OO아버님은, 자상하시네요. 늘 아이 하교시간에 나와계시고, "

"요즘 여유가 좀 되시나 봐요?"


"아 네.. 제가 요즘 재택근무 중이라서요.."

"사실 재택근무 중이라도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데, 회사에서 편의를 좀 봐주고 있습니다 하하.."


"어머 참 좋은 회사네요. 저희 남편은 코로나여도 아랑곳 않고 출근하는데,,"

"역시 큰 회사가 좋나 봐요.. 들어가세요 그럼~"


나도 모르게, '재택근무'중이라는 거짓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어버렸다.


아이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내가 소속된 조직이 없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하는 감정도 들었고..


아이가 물었다. "아빠 내일도 회사 안 가고 나 데리러 학교에 와?"

"OO는 아빠가 학교 앞에 오는 거 싫어?" "엄마가 왔으면 좋겠어?"라고 되물었다.


"응 엄마가 오는 게 좋아"..


철없는 순수하게 엄마를 좋아하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만, 뭐랄까..

좀 서운하다고 해야 하나.. 이제 고작 여덟 살 아이한테 그런 감정이나 느끼는데,

내 멘털이 많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이상 회사원이 아니어서 겪게 되는 어색한 상황은 비단, 자녀 하교 때만 일어 나는 일은 아니었다.

늘 아들을 사위를 "어느 회사 다니는 누구"라고 지인 분들께 소개하셨던,

장인/장모님과 부모님께서 더 이상 나를 소개할 타이틀이 사라지신 것이다.


특히 내 아버지는, 회사에서 잘린 것이 창피한 일로 생각되셨는지, 당분간 친척 분들에게도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었으니 말이다..


나 하나 회사 밖을 나온 게 나를 둘러싼 주변의 가족들에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영향을 끼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 스스로에게 짜증도 났고 나를 이렇게 만든 회사에게도 원망스러운 감정이 수시로 드는

그런 날들의 연속이 계속되었다.


한편으론, '코로나'라도 있었기에 낮에 돌아다니는 중년의 남성이 어색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었을 때였으니까..


그렇게 아이가 입학 한 3월이 흘러가고 있었고.


서류상 공식적인 나의 퇴사일이 다가오게 되었다.



2021년 3월 26일.


아침 일찍 상암동으로 향했다.


사원증을 패용하고 보안게이트를 지나, 9층으로(아직도 기억하는 근무 층수 참 놀랍다..) 올라갔다.

법인카드를 재무팀에 반납을 했고, 신협에 가서 조합원 출자 계좌 해지 신청을 했고,

사원증을 총무팀에 반납을 했다.


이동시간 포함하여 10분이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 소속이었던 인사팀에 실업급여 신청을 위한 빠른 행정조치를 부탁드릴 겸,

(따로 인사 하셔도 된다는 사전 당부 말씀도 있었지만 그래도)부서장 인사도 할 겸

방문했으나, 바쁘신 인사팀장님은 자리에 없었고 다른 팀원들 역시 열심히 근무 중이었다.

급여담당 여직원에게 인사를 건네며, 빠른 처리 부탁을 뒤로하고 건물 밖을 나섰다.


이제 진짜 끝이구나.


호암아트홀 시절에서 서소문 사옥, 그리고 상암 사옥까지 이곳에서 10년 넘게 근무를 했던 순간이

정리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이라 공식적인 회식을 할 수 없었던 때라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런 나의 10년간의 한 직장에서의 마무리였다.



(다음 편에 계속)



"김 차장의 퇴사 그 후의 삶"은 진행형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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